고등학교 졸업 후,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쯤, 친하게 지내던 무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 지내던 A가 맨날 연락해왔다. A와 통화를 늘 하다 보니 내적으로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연락을 꾸준히 이어오던 어느 날, A가 옷 가게에서 사람 뽑는다며, 내게 같이 하자고 했다. 하겠다고 했다. 봄 끝물였던지라 가벼운 옷들을 몇 개 트렁크에 넣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른 아침부터 비행기 타고 올라갔다. 서울에 도착하고 A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겨우 찾아갔다. A는 오느라 고생했다며 엄청 반겨줬다. 술집에 갔다. A는 옷 가게 일을 못 하게 될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좀 허무하긴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속으로는 ‘내일 내려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근대 A가 더 좋은 일이 있다며 내일 같이 가자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일찍부터 나가야 한다며 A가 재촉했다. 회사에 도착했다. A를 따라 1층에 있는 교육장으로 들어갔다. A는 교육 잘 들으라며 나를 두고 나갔다. ‘같이 듣자고 해놓고 왜 나만 두고 가지?‘ 싶었다. 교육은 하루 종일 네트워크마케팅에 대한 내용이었다. ’네트워크 마케팅이 다단계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다단계가 아니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나는 스무 살까지 할머니와 시골집에서 살았기에 다단계에 대한 인식도 없었고 세상 물정은 1도 몰랐다. 멋모르고 4일 동안 교육을 들었다. 그리고 분위기에 휩쓸려 네트워크마케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지내며 무슨 시스템인지 알게 되었다. 먼저 친구에게 전화해서 일자리 소개해 준다고 거짓말을 한 후, 친구가 오면 일이 파투 났으니 교육을 받아보자고 권유하는 식이였다. 이때 나는 그렇게 좋은 거라면서 스토리로 꾀 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긴 했지만 이왕 하기로 한거 시키는 대로 하고 하라는 대로 했다. 회사는 새벽 5시부터 앳된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모두 종일 ’성공‘을 외치고, 핸드폰과 씨름을 했다. 핸드폰 비를 낼 돈도 없어 sk가 막히면 kt로, kt가 막히면 lg로 개통을 했다. 지낼수록 돈에 대한 압박이 심해졌다. A도 나도 돈이 없었다. 보름달 빵이 3개 묶음으로 1000원에 팔았는데, 그걸 사다가 주차장에 숨어서 먹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숨어 빵으로 점심을 겨우 때우고 있었다. 내가 상상하고 동경하던 서울 생활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부른 친구에게도 같이 성공하자고 했다. 하지만 내가 부른 친구들은 다단계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좋은 네트워크 마케팅을 몰라주는지 서운하기까지 했다. 세뇌당한 상태였다. 친구들은 무지한 나에게 이건 답이 없다고 하고 돌아갔다. 그때까지도 나는 A 하나 믿고 성공하겠다며 6개월 넘게 버텼다. 같이 성공을 외치며 함께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안 보이기 시작했다. A에게 물었다. A는 계속되는 나의 질문에 귀찮은 듯 짜증을 내며 이상한 대답들만 늘어놓았다. 그간 내가 무심코 넘어갔던 일들, 의아했던 것들이 생각이 났다. A는 나와 함께 성공하고 싶어서 나를 부른 게 아니고 단지 부를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