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시 15분,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달렸다. 조금만 더 늦으면 6시 반 퇴근자들까지도 몰려들게 된다.
승강장은 으레 그렇듯 사람들로 넘쳐났다. 열차를 두 번 더 보내고서야 내 차례가 왔고, 사람들에게 떠밀리듯 열차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열차는 이미 포화상태였지만 사람들은 서로를 밀고 누르며 빈자리를 확보했다. 마침내 스크린도어가 줄을 자르듯 닫히고 나서야 열차는 제 갈 길을 떠나게 됐다. 과도한 하중에 항의라도 하듯이 열차는 거칠게 활보했고, 그럼에도 그 누구 하나 넘어지지 않았다. 서로의 무질서한 압박은 역설적이게도 서로를 지탱했다. 다만 압박감에 숨이 끊길 것 같을 뿐이었다. 예정된 시간 동안만 견디면 되는 명확한 고통, 그리고 그 안에서 느끼는 묘한 안정감. 어쩌면 여기가 집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스크린도어가 열렸다. 서로를 누르며 지탱하던 무언의 연결점이 끊어졌고,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물밀듯 열차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압박이 만들어낸 안정은 무참히 깨졌고, 이제는 서로를 열차 밖으로 밀어냈다. 그 안에서 중심을 잃은 나는 사나운 인파에 휩쓸려 열차 밖으로 튕겨 나오고 말았다.
그렇게 세상에 밀리고 밀리다 어느덧 도착한 반지하 집 앞, 단 한 사람만 아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오롯이 혼자 존재하게 될 공간에 불을 밝혔다.
반만 들어오는 전구 빛으로도 비좁고 어지러운 6평짜리 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서로 간의 통일성이라곤 없이 우후죽순 자리 잡은 중고 가구들과 몇 걸음 걸을 수도 없는 바닥을 지나 방 안에 들어왔다. 식탁 겸 책상 위에 널려있는 고지서들이 의무를 잊지 말라는 묘한 압박을 보냈지만, 애써 무시하고 책상 한 켠으로 밀어버렸다. 책상 구석에는 이미 부족한 수납공간의 경쟁에서 밀린 물건들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온전히 나만 있는 공간과 눈 앞에 펼쳐진 불편하고 습한 자유. 그리고 섬뜩한 정적. 집 안 물건과 가구들이 한꺼번에 나를 향해 시선을 쏟아냈다. 뭐 잊은 것 없어? 여기 네가 해야 할 집안일들이 한가득이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앉아 있으려고?
이럴 거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뛰어왔나 싶었다. 누가 집은 안식처라고 했던가. 습하고, 어둡고, 음침하고, 제대로 된 규칙도 없이 인생을 적재시키는 이 비좁은 공간은 되려 일정 시간만 버티면 되는 지옥철보다도 압박감이 심했다. 여기엔 의지할 곳도 없었고, 보장된 미래도 없었다. 되려 평생 이렇게 불안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강한 불안감이 목을 옥죄곤 했다.
이 비좁고 불안한 공간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방 안에는 누구도 없지만, 그만큼 내가 끌어안은 공포감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 온전히 내 인생으로만 얽히고설키며 만들어졌지만, 그 어디보다도 심적으로 위험하고 복잡하며 불안정한 공간을 뭐라고 형용해야 하지 싶었다. 집이라는 단어를 붙이긴 민망했고, 벽이 있고 잠을 잘 수는 있다고 방이라고 부르자니 기분이 별로였다.
방에 만연히 퍼진 정적을 깨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침투하듯이 들어왔다. 아마 옆집 사람이 티비를 보며 웃는 소리인가 싶은데, 마치 야생동물이 울부짖는 소리 같았다.
밀림이다, 밀림. 6평짜리 밀림.
난 여기서 1년째 길을 잃은 조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