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 함이 다양한 배경의 동료들과 다양한 시간대에 함께 일한 이야기이다.
함에게는 한국에서 자라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으레 하는' ‘원래 그런' 규칙과 기준이 참 많았다. 누군가가 함에게 “밥 한번 먹자”라고 하면, 당장 약속을 잡아야 하는 것인지, 그냥 흘려들어야 하는지 항상 고민스러웠다. 예의상 한 말인데 당장 약속 잡자고 하면 괜히 분위기만 어색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함은 주춤거리며 분위기를 먼저 살피며 한 발짝 늦게 행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여자라면, 30대라면, 손아랫사람이라면, 한국인이라면 혹은 디자이너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 어떤 정답의 규칙과 기준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함뿐인 듯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함만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뿐 아니라, 전체 분위기도 흐려 찡그린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함은 웃으며 ‘아무래도 그렇죠~'라며 공감의 고개를 끄덕였다. 다르게 행동하거나 질문하는 이는 에너지가 많거나 유독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의문을 제기한 누군가를 통해서, '아~ 나만 모르던 것이 아니구나', 라며 조용히 또 끄덕였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환경과 구조' 속에서 최대한 잔잔하게, 물결에 파동을 일으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싶었다. 어색해지는 분위기는 생각만 해도 피로한 일이었다. 함이 손해를 보더라도, 부딪치고 찡그리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다른 방식을 제기한다고 딱히 들어줄 것 같지도 않으며, 에너지 소모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기존의 기준과 규칙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동의하는 구석들을 샅샅이 찾아내거나 최소한의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리고는 ‘의견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기존의 방식이 어느 정도는 맞기 때문’이라며, 스스로가 수동적인 것은 절대 아니라고 되내었다. 그래도 여전히 꺼림칙한 부분은 '어쩔 수 없다'다며, 그저 흘러갈 수 있기를 바라며 움츠렸다. 누가 정한 지도 모르는, 남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따르고 있는 기준과 규칙 범위 내에서 함은 누구도 거슬리지 않을 범위 내에서 동글동글하게 잔잔하게 움직였다.
조용히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함은 다양한 배경의 동료들과 다양한 시차 속에서 디지털 공간에 함께 모여 일하였다. 각기 너무 다른 동료들에게는 각각이 만든 서로 다른 기준과 규칙이 있었다. 그들의 기준과 규칙은 그들의 것이지, 함에게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함이 본인의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함은 다른 사람들의 규칙과 기준들 사이에서 한없이 잠식되어 버릴 것 같았다. 함은 더 이상 조용히 일만 열심히 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규칙과 기준을 세워야 할 때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