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고 훌륭한 백인 추장은 우리의 땅을 사고 싶다고 제의했다…그것은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 누이이고 순록과 말과 큰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강의 물결과 초원에 핀 꽃들의 수액, 조랑말의 땀과 인간의 땀은 모두 하나다. 모두가 같은 부족, 우리의 부족이다…인간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가는 간다. 자기네 하느님과 친구처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시애틀이 쓴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는 생태주의에 관한 글 중에 가장 뛰어나다 평가받는다. 드넓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 그들이 살았던 곳을 여행하면서 왜 그런 사상이 나타났는지를 공감하게 된다. 사막과 바다, 설산과 협곡, 초원과 빙하. 압도적인 경치를 보여주는 곳은 다른 대륙에도 많지만, 아메리카만큼 생태지리적 다양성이 집약된 곳은 드물다. 원주민들의 생태주의적 사상을 포함하여, ‘국립공원’이라는 자연 보존에 대한 규범적 제도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도 이해가 된다.
시애틀을 방문한 건 8년 전 어느 여름이었다. 그해 가을엔 친구들과 블랙힐스의 시팅 불 동상을 보고 오기로 했는데, 장거리 로드트립 전 나홀로 프리뷰를 하고픈 생각이었다. 나는 옐로스톤과 시애틀을 고민하다 시애틀로 방향을 잡았다. 시팅 불이 백인에 대한 원주민들의 저항을 상징한다면, 시애틀은 문명과 개발의 대칭에 서서 자연과 보존에 대한 정신으로 어울렸다. 그런 그의 이름을 딴 도시를 로드트립 전에 걷고 싶었다.
시애틀은 내가 살던 어바인에서 2,00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나는 최단거리로 노선을 짜며 시애틀을 포함해 다섯 지역을 좌표로 삼았다. 어바인을 나서 캘리포니아 최북단의 레드우드 공원으로 가 숲을 둘러보고, 시애틀로 가 도시의 메인 스폿을 하루 안에 돌아본 후, 올림픽 공원을 한바퀴 돌아 레이니어와 모로 베이를 찍고 오는 일정이었다.
샌프란시스코를 넘어 북쪽으로 갈수록 손질된 나무를 싣고 가는 트럭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벌목된 나무들의 흔적도 보였다. 수백년의 시간이 무너진 자리. 이 정도의 씁쓸함은 현대사회의 모든 이가 느끼는 연대채무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나는 첫번째 목적지인 레드우드 공원에 도착했다. 숲에는 으스름한 노을이 해무에 녹아 흩어지고, 마천루 같은 나무들은 아득한 하늘에 닿아 있었다.
한시간 남짓 숲을 돌아보고는 잠깐의 쪽잠을 청했다. 그리고 새벽같이 시애틀로 향했다. 오레곤을 통과하는 사이에도 레드우드는 이어졌고, 한낮이 되어서야 나는 워싱턴에 도달했다. 그쯤되니 피로와 졸림은 고요한 설렘으로 변해 있었다. 동경하는 누군가의 흔적을 쫓는 게 다 그런 것이 아닐까. 달리에 대한 애정으로 바르셀로나를 찾고, 헤밍웨이를 떠올리며 파리를 방문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를 곱씹으며 새벽녘 워싱턴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의 여행을 돌아보면 도시의 모습과 함께 시애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을 사랑하듯이 이 땅을 사랑해 달라”고 하던 그의 말. 아름다운 이 땅을, 지구를, “온 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고 하던 그 말을, 너른 대륙을 돌아보며 느끼는 지구의 넓이와 아름다움을, 그것에 대한 감사와 지키고 이어감에 대한 의무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