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이 다니던 회사는 유급휴가가 무제한이었다.
회사는 유럽에 위치하였지만, 함은 한국에서, 동료들은 아시아, 미대륙, 유럽 등의 각자의 공간에서 온라인으로 출근하였다. 동료들의 시간과 지역을 연결하면 지구 한 바퀴를 여행하는 것도 가능할 정도였다.
법정 공휴일은 동료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따라 각각 달랐다. 1년을 기준으로 스웨덴은 13일, 영국은 8일, 캐나다는 5일, 한국은 11일의 공휴일이 있다. 모든 EU 근로 노동자의 최소 4주 유급 휴가를 보장해야 하고, 한국은 15일 휴가를 의무로 하고 있다. 병가가 유급으로 인정되는 곳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유급 출산 휴가도 0주에서 58주(약 14개월)까지 나라마다 달랐다. 명절도 동료들의 문화적 배경과 종교에 따라 달랐다.
각 나라에서 정한 법적 휴가를 따르게 되면, 각기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지만, 같은 일을 하고 있는 팀원 간에 서로 불편한 상황이 생길 듯하였다. 어떤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누구는 오래 쉴 수 있지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누구는 짧게 쉬어야만 한다. 병가가 인정되는 곳에 살고 있는 어떤 이는 아플 때 쉴 수 있지만, 병가가 인정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는 누구는 쉴 수 없게 된다. 업무계약도, 근무 일수도 동료마다 달랐기에 휴가를 체크하고 공정성을 일일이 확인하다 보면 오히려 행정 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 함이 다녔던 7~80명 규모의 회사는 휴가를 일일이 휴가를 세어가며 들어가는 행정 비용을 감당하기보다는 각자가 필요한 만큼 휴가를 마음껏 쓰도록 하는 무제한 휴가 제도를 선택했다.
프로젝트 진행에 문제만 없다면, 각자의 컨디션에 따라서 언제든지 반나절부터 한 달 이상까지, 길고 짧게 휴가를 낼 수 있었다. 누구든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휴가를 낼 수 있기에 휴가 갈 사람은 미리 팀에게 알리고 일도 미리 처리하고 부탁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누구도 휴가를 많이, 오래간다고 눈치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휴가를 간다고 하면 잘 다녀오라고 서로의 휴가를 응원하였다.
다만, 회사가 휴가 일수를 정해주는 대신 휴가에 대한 판단을 각자에게 맡겼기에 무제한 휴가는 곧 각자가 각자에 맡는 규칙과 기준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