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부담감, 하지만 사회 속 모두가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한다는 좌절감.
혹은, 이 모든 걸 이겨낼 능력을 아직도 갖추지 못했다는 패배감.
어디서부터 잘못이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열심히, 묵묵히 견뎌내는 것 말곤 아는 게 없었던 게 화근이었다.
자취방에 도착하자마자 컵라면에 물을 붓고 면이 채 익기도 전에 책상 앞에 앉았다. 퇴근 직전에 받은 업무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 이틀 안에 끝날 업무가 아닌데, 당장 내일 아침에 완성이 되어야 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는 표현이 아주 적절한 상황이었다.
대강 익은 라면을 입안에 욱여넣으며 노트북 자판을 두들겼다. 제대로 된 식사라는 건 원래부터 이 월급으론 이룰 수 없는 사치였고, 지금은 밥 먹는 시간조차 낭비로 느껴졌다.
당장 눈앞에 있는 업무를 완성하지 못할 경우에 들을 말들은 벌써부터 뻔했다. 네가 그러니까 아직도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다, 제정신이냐, 하여튼간 발전이 없다... 가장 고통스러운 건, 이게 이젠 더 이상 남이 나에게 하는 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일 한 지 1년이나 됐으면서 아직 이것밖에 못 해?'
지독한 문장이 마음에 탕, 하고 떨어졌다. 어제도, 내일도 나를 때릴 너무나도 익숙한 문장. 처음에는 남이 나에게 던지는 빈정 어린 말이었지만, 이젠 내가 나에게 매일같이 퍼붓는 비난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좌절감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퍼붓는 경멸 어린 잔인한 조롱.
적어도 나만큼은 나를 돌봐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나조차도 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에, 필요 이상의 습관성 비난을 일삼는 이들의 편에 서서 책임감이라는 말로 나를 혐오했다.
타닥타닥타타타, 점점 빨라지는 타자 소리는 작은 방을 가득 채웠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독기를 품고 온 힘을 쏟아냈다. 지금 이런 것 하나도 견디지 못하면 어떻게 앞으로의 사회생활을 이겨내겠어, 하는 생각으로 의자에 나를 묶었다. 아마 이 말도 처음부터 내 목소리는 아니었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업무는 얼추 된 것 같긴 했지만 차마 의자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미 무수한 불안감들이 온몸을 짓누르듯 쌓여 있었고, 분명 잘못된 게 있을 거란 생각이 계속해서 마음에 불을 지폈다. 결국 몇 시간 못 잔다는 걸 알아챈 시곗바늘이 강제로 나를 눕히고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천장을 바라보고 눕자, 얼기설기 자취방에 자리 잡은 가구와 물건들이 한꺼번에 나를 내려다봤다. 정신적으로 사무실에서 벗어나 온전히 방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는 듯, 저마다의 민원을 들고 한 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빨래가 밀렸잖아, 언제 걷고 언제 돌릴 거야? 방 어지러운 거 안 보여? 좁다고 정리 제대로 안 할 거야? 가스비랑 물가 오른 거 봤잖아, 그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몰라, 나도 모르겠어, 제발, 그만 물어봐.
마음에 쌓아 올린 부담감에 불이 붙었다. 사무실에서부터 가져와 방 안에서도 온몸 가득 품고 있었던 독기는 마음 밖으로 터져 나와 자취방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내 나의 작은 방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유해한 공간이 되었다. 눈에 보이고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모든 게 뜨겁고 아팠다. 세상에 내가 잠시라도 숨을 수 있는 곳은 없었고, 언제 이 고통이 끝날지에 대한 기약도 없었다. 눈물이 나올 새도 없이 고통은 계속해서 타올랐고, 억지로 집어삼킨 비명이 영혼을 갉았다. 이게 평생을 견뎌야 할 사회적 책임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거지?
살기 위해 이것저것 빽빽하게 채워서 마치 복잡한 밀림 같았던 6평짜리 나의 반지하 자취방,
사회에서부터 흘러 들어온 오염된 일상들과 불안한 생각들,
그리고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타들어 가며 질식하는 나의 나약한 영혼.
이렇듯 돌이켜 생각해 본 나의 사회 초년기란 날마다 세상으로부터 나를 구하겠다는 슬프고도 불안정한 비장함의 연속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