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인 함이 멕시코 사람의 쉼이나 휴가를 상상하기 어려운 만큼 독일 동료가 한국인 함의 휴가에 대해서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멕시코 하면 타코와 챙이 넓은 모자와 판초, 스페인의 과거 식민지 정도가 떠올라, 함이 제멋대로 현대 멕시코인들의 길고 여유로운 휴가를 전제한다면 참으로 어색해질 수가 있다. 멕시코는 전 세계에서 일하는 시간이 가장 긴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함의 멕시코인 동료가 알려주기 전에는 알기 어려웠다. 짐작하기 어려우면 무엇이 필요한지 제안하기도 챙겨주기도 쉽지 않았다.
**멕시코 근무 일수는 주 6일로, 2,128시간이며, OECD 국가 중 평균 연간 시간이 가장 길다. 한국은 1,910시간으로, 상위 5번째이다.*
휴가에 인색한 나라에서 자란 함의 학창 시절은 학원으로 가득 차 있어 휴가란 길어봤자 3박 4일 정도였다. 회사는 휴가가 무제한이라고 했지만, 정말 일주일 이상 쉬고 온다면, 영원히 쉬게 될 것만 같았다. 함에게 일주일 이상의 휴가는 퇴사하고서나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회사가 무제한 휴가라고 했지만, 여전히 함에게 휴가는 인색하고 눈치 봐야 하는 존재였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며 당연하다고 알고 있었던 함은 무제한 휴가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은 되려 쉴 시기를 계속 놓쳐버렸다. 함은 동료들에게 마음 놓고 휴가 가는 것이 익숙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어릴 때부터 한 달씩 휴가를 가는 것에 익숙한 유럽 동료들은 전혀 몰랐다며 놀라워하였다.
무제한 휴가가 있는 조직에서는 컨디션 조절도 업무 역량이 되었다. 휴가 일수가 부족하다고 탓할 수도 없다. 휴가가 무제한임에도 휴가를 쓰지도 못하고 컨디션 조절도 하지 못한 함은 스스로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도 쉬지 못하고 있는 함은 무엇에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른 체 화가 났다.
함이 너무 긴 근무시간과 업무량을 토로할 때마다, 인사팀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일의 경계를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도 너의 경계를 지켜주지도 않을 거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동료들과는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언어를 쓰며 자라온 한국인 함은 각국에서 온 동료들 사이에서 함 스스로를 외국 노동자로서 다른 동료들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만큼 스스로를 증명해야할 것 같았고 멈추고 휴가 가기가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