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이 계속되던 한 때, 나를 늦은 밤까지 깨어있게 한 생각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 중심에는 불안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내 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수분에 불안이 진하게 희석되어 내게서 불안을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점점 존재감이 커지는 불안에 나를 빼앗기고 싶지 않아 오랜 시간 불안과 힘겨운 싸움을 했다.
불안을 외면하며 잊어보려 노력하고
불안을 다른 감정으로 밀어내 보려고 하기도
아니면 낱낱이 파헤쳐 분석해보기도
불안이 느껴지는 대로 가만히 있기도
생각해낼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그 모든 시도가 불안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 순간은 이겨낸 듯 보였지만 돌아서면 또 불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불안은 내가 이길 수 없다는걸 깨달았다. 나라는 사람이 나약하고 부족해서 불안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성질은 이긴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스며든 미세먼지의 존재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불안이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스며들어 있다.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것조차 불안한 지금 시대의 불안은 나의 불안만 유별난 것이 아니었고 또 그 불안은 오로지 나로부터 기원한 불안이 아니었다.
너무 작은 입자로 스며들어 걸러내기도 구분해 내기도 어렵게 삶에 모든 구석에 내려앉은 불안을 이겨내려고 했다는 게 처음부터 잘못된 접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찾아온 불안이라는 불청객을 내쫓을 수 없다면 마스크를 쓰고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달갑진 않지만,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내가 발견한 불안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마스크는 ‘불안의 긍정‘이었다. 어찌할 도리 없이 계속 불안과 공생해야 한다면 ‘불안을 이겨내고 싶다 극복하고 싶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불안하지 않고 평화롭고 마음이 잔잔하기만 한 날이 계속된다면 행복할까?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는 상태가 진정 원하는 삶일까?
불안 때문인 고통은 사라지겠지만 삶을 살아가는 흥미도 없어질 것이다.
회사 생활이 힘들어 퇴사 노래를 부르다 백수가 되었지만, 백수생활의 모든 순간이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무언가 맛있어서 그 음식을 계속 먹고 또 먹으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물리는 순간이 오는 것처럼 불안 없는 삶이 계속된다면 그 모든 순간이 행복하진 않을 것이다. 영원하기만 행복도 없고 계속되는 불행도 없다. 행복만 계속 이어진다면 행복을 행복이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계속되는 행복 사이 불행이 존재해야 행복도 행복으로 존재할 수 있다. 행복을 행복이라 느끼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삶보다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을 원한다면 불안을 무조건 부정하기보다 불안은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달갑진 않지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