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네, 알겠습니다. 문제 없도록 복귀하면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거칠고 사나운 말. 거기에 맞춰 고분고분 굽신이는 내 말투.
"네, 알겠습니다. 네, 네."
뚝, 전화가 끊겼다. 화면을 보고 전화가 완전히 끊긴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뭐래, 진짜 어이없네."
그렇게 급한 거면 자기가 하든가. 언제까지 필요한 문서인지 빤히 다 아는데, 그냥 금요일에 연차를 쓴 게 아니꼬워서 전화 해 본 거겠지.
전화기를 툭 집어던지고 다시 박스에 이삿짐을 옮겨 담기 시작했다. 이 작은 공간에 뭘 그렇게 많이 끌어안고 살았는지, 자잘한 물건들이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하나하나 다 담아가려다 보니 금세 지치기도 했고 생각보다 필요가 없을 것 같은 게 좀 있었다. 그런 건 상자에 넣지 않고 일단 책상 위에 모아두었다. 정말 중요한 것들 위주로 먼저 포장을 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처음엔 중요한지 아닌지 고민을 좀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손놀림이 과감해졌다. 다행히 점점 짐을 싸는 속도가 붙어서 용달이 도착하기 전에 청소까지 충분히 끝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포장도 얼추 끝났고, 처분하기로 한 가구들도 전부 새 집으로 떠났고, 드디어 남은 건 손걸레와 쓰레기봉투, 그리고 책상 위 잡동사니. 잡동사니들을 빤히 노려봤다. 다시 생각해도 굳이 데려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책상 밑에 쓰레기봉투를 받치고 팔로 한꺼번에 밀어 우르르 버렸다. 속이 시원했다. 그렇지 뭐, 곧 기억도 나지 않을 아주 작은 것들까지 하나하나 다 안고 살아갈 순 없으니까.
사는 건 으레 정착을 하고 뿌리를 내려 자신의 위치에 알맞게 자리를 잡아 나가는 거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에 동의를 할 수 없다.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내가 뿌리를 내린 땅은 결국 나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어딜 봐도 척박한 환경인지라 영양분이라곤 없었고, 그나마 뿌리 한 뼘 내릴 수 있던 곳도 결단코 비옥하지는 않았다. 그게 직장이든, 자취방이든.
이렇게 또 한 번, 다음에 머물 곳으로 떠난다. 벌써 수차례 감행한 이동이지만 여전히 나는 불안정하고, 불안하고, 언제쯤 이런 좌절의 끝이 보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런 불안감에 시달려 허우적대다가 또 다시 마음에 큰 불이 나기도 했고, 도망치듯 떠나 새 터전에 자리를 잡아도 같은 일을 겪는 건 마찬가지였다. 결국 어디에 있든 비슷한 일은 윤회하듯 반복되곤 했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내가 무엇을 끌어안고 살 지에 대한 기준이 점차 바뀌고 있는 것 같다는 작은 느낌 정도.
먼 훗날에는 기억도 나지 않을 자잘한 것들을 굳이 끌어안은 채 아파하지 않고, 아무리 척박한 환경이라 해도 오염된 영양분은 흡수하지 않으려 하며, 상처 입은 경험을 잘 다듬어 다음 계절에는 조금 더 나은 씨앗을 만들어 다시 한 번 그럴싸한 뿌리를 내리는 것. 그게 내가 매 순간 사회에서 마주하는 상황들과 어쨌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지 싶다.
마침내 용달차가 도착했다. 짐이 하나둘 방에서 빠져나와 트럭에 실렸다.
이제는 정말로 다른 곳으로 떠날 시간이다.
문을 닫기 전에 문득 돌아본 방은 어색할 정도로 넓어 보였다. 이 안에서 필요 이상의 것들을 모두 끌어안고 사느라 그렇게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 보다. 그래도 이곳에 대한 미련 같은 건 없다. 좋든 나쁘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기억을 모두 꺼내 가차 없이 쓰레기봉투에 넣어 문 앞에 내놓았다. 그러곤 이삿짐들과 함께 용달 트럭 위에 올라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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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에 빠질 무렵 울리는 휴대폰 알림.
내용은, 클라이언트사에서 굳이 금요일 오후에 요청한 긴급 건에 대한 업무 지시.
그래, 감상은 감상이고, 현실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