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태나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숙소를 나와 두 시간쯤 되니 일행은 모두 잠이 들었을 때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을 며칠째 달렸다. 모두 고단했을 것이다. 경이로움, 광활함 같은 대자연의 수식어들도 인간의 지루함을 이겨내기 어렵다. 감동은 이쯤에서 클리셰가 돼버린다.
별안간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언제 깼는지 엄마가 나를 룸미러를 통해 빼꼼히 바라보고 있었다. 초원의 노란 빛과 푸른 하늘빛이 들어 찬 작은 거울 속, 엄마의 눈빛은 유독 반짝이며 시선을 잡아끈다. 내가 졸지는 않는지, 과속은 안 하는지, 추월하지는 않는지 감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내 운전 실력은 썩 괜찮은 편이다. 북미와 유럽에서 1년 반 동안 10만km를 무사고로 주행했고 콜로라도에서 어바인까지 하루 2,000km를 달린 적도 있었다. 음주 운전도 졸음운전도 경험 무. 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아들~안전운전~” 주문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들 차 한두 번 타봐요? 걱정 말고 좀 주무세요”라는 말에 엄마는 ‘칠순 자식새끼’ 이야기를 꺼냈다. 아흔 노파와 칠순 아들이 식당에 갔는데, 몇 분이 오셨냐는 직원의 물음에 어른 하나 애 하나로 답했다는 이야기. 그것과 운전이 무슨 관련인가 싶지만 왠지 알아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족과 여행을 함께할 때면 룸미러 속 엄마는 늘 그렇게 뒷좌석에 앉아 나를 응시 해왔다. 사람들의 여행 후기를 보면 각각 다른 여행지에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 찍는 게 유행이었는데, 나는 그것 대신 가는 곳마다 룸미러 속 풍경과 함께 엄마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사막과 초원, 바다와 협곡으로 채워진 룸미러 속, 나를 감시하는 빛나는 두 눈동자가.
시간이 지나면 뒷자리에 앉아 룸미러를 바라볼 차례가 나에게도 올 것이다. 달달거리는 US395와 15번 고속도로에서 눈을 치켜뜨고 빼꼼히 룸미러를 관찰할지 모른다.
가능한 오래 지금의 자리에 앉고 싶다. 아흔 노파와 칠순 자식새끼, 그보다 더 오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언젠가 이 운전석을 아이에게 넘길 때면, 긴 여행 끝에 돌아온 어느 도시의 한식당에서 엄마와 나, 동생, 우리의 아이들 모두 한 상에 둘러앉아 나누고 싶다. 지구를 돌아보며 느낀 이 감동을, 과정의 지난한 감상들과 지루함을, 그 모든 시선을 가족들과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