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이 자란 한국에서는 피부가 하얗다고 하는 것이 응당 칭찬이었는데, 각국에서 온 동료에게 하얀 피부는 딱히 좋은 말이 아니었다. 한국에선 수직으로 솟은 아파트에서의 삶이 당연하였지만, 유럽에서 만난 동료들에게 아파트는 낯선 거주 형태였다. 북으로 가면 춥고 남은 따뜻한 곳이라고 여겼지만, 호주에서 온 동료에게 따뜻한 곳은 북이라고 하였다. 한국의 식민지 기간은 35년이었지만 남미는 400년이 넘었다. 한국에서는 지배자와 지배자의 분리가 당연하였는데 어떤 국가에서는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만큼 역사를 배우는 관점도 나라에 대한 관점도, 자연을 다루는 관점도 달라졌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많았다. 짐작하기 어려우니 당사자가 필요한 것은 당사자가 직접 경계를 만들고, 필요한 것을 요구해야 했다. 그 누구도 당사자 대신 기준과 규칙을 만들고 제안해 줄 수 없었다.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은 와중에, 당연해진 것은 불편함과 머쓱함을 동반한 과정이다. 모르면 물어보는 것 또한 당연해졌다.
물어보는 것이 당연해지면서 그만큼 궁금한 것도 참 많아졌다. 함은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며 묻고 알아가는 것에 익숙해졌다. 묻고 제안하는 것이 종종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지만, 어설프게 짐작하는 것은 더 돌이킬 수 없는 불편함으로 돌아왔다.
한국인 함은 다양한 범위의 기준과 규칙을 경험하고 지켜보고 나서는 오히려 '으레', '당연한' '어쩔 수 없는' '원래 다 그런 것'에 조심스러워졌다. 함이 스스로 만든 기준과 규칙도 그 다양한 기준과 규칙 중의 하나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의문을 품고 제안하는 것에 용기가 생겼고 조금은 익숙해졌다.
크리스마스 때 으레 뱉던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조차도 동료는 웃으며, “나는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아. 하지만 좋은 연휴 보내!”라며 예상치 못한 대답에 어색한 공기가 잠깐 흐를 수도 있다. 함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은 다음 해 크리스마스에는 동료에게 연휴를 잘 보내라고 말할 것을 되새겼다. 동시에 크리스마스 대신에 어떤 연휴를 어떻게 보내는지 그 동료의 연휴도 궁금해졌다. 함은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