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해 예술 계열을 전공했다. 창의성이라는 재능 비슷한 조금은 뾰족한 능력이 분명히 있다. 어릴 적 분리수거 쓰레기를 조합해 인형을 만들어 색칠도 했었고, 4면으로 각진 물건을 사계절이 담긴 연필꽂이로 만들어 엄마에게 선물했다. 티셔츠 목 부분을 가위로 싹둑 잘라 굴러다니는 단추도 달아보았다. 면봉으로 물감을 콕콕 찍어 하나하나 다 그리기 힘든 나뭇잎도 빠르게 그려보곤 했다.
늘 다르게 생각하고 보지는 못했다. ‘널 좋아해’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말 그대로 ‘내가 좋구나’라고 생각했고, ‘난 괜찮아’라는 말을 들으면 ‘괜찮구나’ 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던저진 말들을 그냥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세상이 던지는 크고 작은 규율에 진심으로 반항한 적도 없다.
얼마 전 경력직으로 유관부서에 들어온 한 분의 퇴사 소식이 놀랍지 않으면서 동시에 놀라웠다. 들어온 지 3달 조금 넘었다. 처음부터 그분의 업무 성향이 그 누구에게도 마음에 들어 보이진 않았다. 여기에 맞춰보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까라면 까야지’라는 기업문화가 그분에겐 스며들지 못했다.
퇴사 1주 전 같이 커피 한잔하며 인사를 나눴다. 커피를 마시며 잠깐의 얘기를 나누는데 나보고 그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여기가 전부가 아니에요” 나는 “그렇죠, 그렇겠죠. 근데 이정도 대우가 별로 없잖아요. 어쨌든 부러워요. 나가는거” 라고 대답했다.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라고 그는 말했다. 사실 그분 말이 맞았다. 누구나 선택해 나갈 수 있었다. 단지 나는 지금 나갈 수 없다는 어디서부터 주입되었는지 모르는 알 수 없는 선이 마음을 뚫지 못하고 가두고 있었다.
하얀 도화지에 연필로 스케치하면 괜찮았다. 지울 수도 있고 힘을 빼 그리면 칠하면서 바뀐 생각을 표현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이제는 연필로 이렇게 저렇게 그어보는 스케치가 생각나지 않는다. 검은 매직으로 진하게 그려졌다. 선 위로 덮어 칠해도 어차피 검은 선 때문에 표현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득차 선을 건드리지 않는 습관이 박혀버렸다. 누가 연필 대신 검은 매직을 손에 꼭 쥐여준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매직으로 선을 그리고 있었다. 어쩌면 트랙 위 이 라인도 지우개로 지워지는 연필 스케치 같은 라인일 텐데 매직으로 꾹꾹 눌러 그려진 라인이라는 생각으로 박혀버려 그 안으로만 달리다가 걷다가 하는 나를 보는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