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르하게 말해서 프리랜서지 사실상 백수였다. 지속되는 코로나로 큰 타격을 받은 회사는 내 월급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솔직히 말했다. 받아들이는 방법밖엔 없었다. 퇴직금으로 노트북을 일시불로 질렀다. 쓰던 노트북은 세월의 무게만큼 무거운 아이였는데 새로 산 노트북은 새하얗고 가벼웠다. 이참에 외주 일을 늘려서 디지털 노마든가 뭔가 되어볼까 했다. 하지만 내 맘대로 안 굴러가는 게 세상이란걸 깜박했다. 회사원의 마음가짐으로 프리랜서 정글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이 일주일 동안 밖을 나가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주일은 못 참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바깥순이는 아니지만 집순이도 아닌 동네순이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네 책방을 다녔다. 못 온 몇 주 사이에 신간이 쏟아져 있었다. 외주로 책 일을 하니 집에선 책이라곤 보다가도 덮어 버렸는데. 책방에 오니 함박 미소로 책들을 팔 사이에 껴놓고 있었다. 마스크를 껴서 다행이었다. 동네책방은 각각이 하나의 책방동네라는 생각이 든다. 놀러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구경도 하며 동네를 만끽한다. 그 동네에서만 만날 수 있는 명물도 있다. 어떤 동네에서는 행복을 받아오고 다른 동네에서는 희망을 받아온다. 동네지기와의 대화가 즐거운 이유다.
좋은 대화를 매일 나누면 인생이 즐겁지 않을까? 책방지기의 자리가 탐났다.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작가와 교류하고 손님과 대화하는 자리가 탐났다. 하지만 책방을 차릴 용기는 없어서 인스타로 책방 사진을 보며 잠들기 전 상상만 했다, 가 손가락이 멈춘 피드가 있었다. 책방지기 구인 피드. 잠들던 눈이 크게 떠졌다. 책 좀 읽었고 책 좀 만들어 봤고 책방 좀 다녀본 나라면. 이 정도면 책방에서 일하는 게 어쩌면 운명이 정해준 수순이지 않을까? 고민 없이 지원했다.
동네지기로 만났던 얼굴과 면접을 보려니 표정이 어색했다. 마스크를 껴서 다행이었다. 책을 얼마나 좋아하느냐, 책의 어떤 점이 좋냐는 예상 질문과 달리 운영과 마케팅에 관해 두 시간을 얘기했다. 덕분에 면접이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었다. 무르게 지원한 내 멍청함을 탓했다. 당황함에 자리를 여러 번 고쳐 앉으며 소신을 얘기했다. 면접에서 탈락해도 계속 찾을 책방인데 꾸미거나 거짓으로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온종일 나 하나뿐인 동네 하나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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