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시절, 기독교를 믿었던 사람들은 박해를 피해 카파도키아의 바위와 동굴로 숨어들었다. 그들은 사람이 거주할 공간만큼 바위를 파고들었다. 바위 안에는 천장부터 바닥까지 빼곡하게 무언가로 긁어낸 자국들로 채워져 있었다. 살기 위해 파내고 상처 낸 자국들. 그들의 상처가 그들의 거주 공간에도 스며든 것 같았다. 그 촘촘한 선을 하나씩 세어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바닥에 십자가를 그리고 기도했을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처연한 상상과 달리 바위의 외부는 카파도키아의 바람에 깎이면서 아름다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수십 개의 바위와 동굴을 구경한 뒤 저녁에는 동굴을 깎아 만든 호텔에 묵었다. 노르스름하고 하얀 분지에 여러 개의 객실이 자유분방한 곡선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곳곳에는 라벤더가 자라나 지나칠 때마다 라벤더 향기가 은근했다. 이곳저곳 구경하고 느지막이 객실로 들어서니 객실 벽에도 아까 바위에서 봤던 자국들과 비슷한 형태들이 보였다. 카파도키아는 과거와 현재를 모두 품고서 그곳에 머무른 모든 자들의 흔적들을 뿜어내는 것일까. 왠지 멜랑콜리해진 마음에 객실 밖으로 나왔다. 날이 밝았고 별이 많았다. 이런 날에는 별 아래에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호텔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테라스에 여행자들과 모여 앉았다. 각자 가지고 있었던 위스키와 와인과 과자와 해바라기 씨를 꺼내놓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웃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기 이야기를 했다. 술은 술술 들어가고 이야기도 술술 풀리고. 알맞게 맞아들어간 날이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다가도 나는 몇 번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낯선 별들이 총총했다. 특히 세 개의 별이 명확하게 오른쪽 아래 하늘에 콕 박혀 있었다. 한 모금 마시며 그 시절 카파도키아의 이들을 위해 한 잔을 올렸다.
어떤 시절이든 차별이 있다. 바위에 숨어든 기독교인들처럼 지금도 어딘가로 숨어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 이미 쫓겨난 사람과 쫓겨날까봐 불안정한 사람, 스스로 검열하며 불안해하는 사람. 점점 예전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다름’이 많아진다. 사랑과 색깔과 육체처럼 단순한 것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렇지만 그런 '다름'들은 다수의 개성과 좀 다른 소수의 개성일 뿐 아닐까. 존재를 존재답게하는 특징 중 하나일 뿐이거나 혹은 종종 심지어 존재의 본질과 관련 없는 특성 한 가지일 뿐 아닐까. 그럼에도 그것이 그들의 전부인 것처럼 그들은 선 밖으로 밀려난다.
한 모금 마시며 그들에게도 한 잔을 올렸다. 내가 잠시 느꼈던 것처럼 카파도키아가 시간선의 모든 이들을 품고 서로의 존재를 느끼도록 하는 공간이라면, 모두가 이곳에서 위로받고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별 아래에서 모두가 둥그렇게 모여 술을 나누는 시절을 상상했다. 그 시절에도 바위는 굳건하고 별 세 개는 총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