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뒷 표정
오늘도 한 사람의 뒷 표정을 읽는다. 화려한 가면을 덧대고 덧댈 수 있는 앞 표정보다는 정제되지 않은 진실함이 오롯이 묻어나는 뒷 표정, 나는 그 뒷 표정을 애정 한다.
누군가와 마주할 때 내 시선은 열 일 하는 얼굴 근육과 과장된 몸짓을 따라다니다 가볍게 흩어지지만, 그 사람이 남기는 뒷 표정엔 한참을 머무른다.
때론 잔잔한 호기심을, 때론 쓸쓸한 애잔함을,
자신도 모르게 남기는 뒷모습의 깊은 여운에서 나는 그 사람이 감추지 못하는 수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읽으려 한다.
시간을 과거로 돌리면 돌릴수록 내가 바라본 누군가의 뒷모습은 냉정함이었고, 차가움이었다.
밤새 놀자 약속했던 친구들은 어둠이 서서히 스며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 집을 향해 등을 돌렸고, 바쁘게 사회생활하던 우리 엄마는 텅 빈 집에 날 혼자 놔두고 황급히 대문을 나섰고, 영원히 함께 하자던 그 사람은 내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며 뒤돌아선 채 말문을 닫았다.
감정의 단절을 의미했던 뒷모습, 거기서 난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을 줄기줄기 엮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 뒷모습이 가지는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여러 표정과 감정을 읽어낼 줄 알게 되면서 오히려 그 모습을 애정 하게 됐다.
사람의 얼굴 근육이 조합해낼 수 있는 표정은 1만 개가 넘는다 한다. 하지만 수많은 얼굴 표정에서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난 종종 뒷 표정을 통해 알아차릴 때가 있다. 당연히 그 여운은 훨씬 묵직하다.
그래서 부담스러운 인연과 헤어질 때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지 않으려 애쓴다. 나를 원망하고 자책하는 감정이 그대로 가슴에 와 박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게 나만의 착각이고 오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간 크고 작은 인연들을 통해 이 정도의 시선의 깊이는 얻었다고 자부한다. 뒷 표정은 아무리 애쓴다 해도 숨기고 포장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길을 걸을 때 앞서가는 사람들의 뒷 표정을 한번 살펴보시라. 긴장, 피로, 흥분, 바쁨, 노여움, 설렘, 짜증, 무념무상 등 그런 다양한 감정들이 그들의 발자취와 함께 묻어날 테니 말이다.
이렇게 남들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레 내 뒷 표정에 대한 부담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나는 헤어짐의 인사 이후 상대방보다 먼저 돌아서는 것을 꺼린다. 예의 바른 배웅을 가장하지만 사실은 나의 정제되지 않은 맨살 같은 표정을 보여주기 싫어서다.
해야 할 말은 정작 하지 못한 채 하는 수없이 돌아서야 할 때, 공허한 말만 두서없이 쏟아내고 난 뒤 피로함만 가득 안고 헤어질 때, 냉정한 거절의 말을 듣고서도 쿨한 척 뒤돌아설 때, 어떤 이를 향해 거침없는 비난의 말을 퍼붓고 난 뒤 애매한 죄책감을 가지고 발걸음을 뗄 때, 단 한순간도 공감하지 않았지만 내가 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한다는 거짓말을 하며 헤어질 때…
이런 모든 구질구질한 감정들을 들키고 싶지 않아 난 늘 상대방을 먼저 배웅하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당하기 힘든 배웅도 있다.
유한한 시간 앞에서 초라해지고, 묵직한 사랑 앞에서 가슴이 무거워지는 그런 배웅, 부모님을 배웅하는 일이다.
내가 유별나게 누군가의 뒷 표정을 살피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부모님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부모님과 물리적으로 홀로서기를 한 후부터 생긴 버릇 중 하나다.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으니 괜한 걱정하지 말라며 부모님을 먼저 배웅했지만 매번 그 작은 이별이 쉽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두 분의 뒷모습을 바라봤고 그러다 마음이 울컥해지면 주위 사람의 뒷모습으로 시선을 슬쩍 옮기고는 했다.
어느덧 두 분의 뒷 표정을 더 잘 읽어낼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부모님을 배웅하는 일은 더욱 쉽지 않다. 최대한 무던해지려 애를 쓰지만 그럴수록 간절함은 배가된다. 부대끼는 감정에 무너지는 게 싫을 때면 난 비겁하게 먼저 뒤돌아선다. 하지만 감당해보기로 한다. 그들의 뒷모습에 부족한 내 사랑과 존경을 더하기로 결심하면서 말이다.
아빠, 엄마가 헤어짐의 인사 이후 돌아서 걸어가신다. 두 분을 향해 두 손을 꼭 모은다. 간절한 마음을 가득 담아 두 분의 뒷모습에 따듯한 사랑을 가득 더해본다.
마음을 울리는 이상의 난해하고 어려운 뒷 표정도 있다.
적어도 내겐 우리 아이의 뒷 표정이 그렇다. 난 요즘 이를 해독하려 무진장 애를 쓴다.
아마 예전에 우리 부모님도 그랬을 테다.
차고 넘치는 나의 사랑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괜찮다지만 혼자 끙끙거리는 뭔가 있는 것은 아닌지, 어른으로 성장하는 지금이 이 시간이 아이에게 너무 고단한 것은 아닌지…
세상에서 가장 주관적인 시선이라 그런지 알쏭 달쏭한 아이의 뒷 표정을 해석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사람들의 뒷 표정을 읽어낼 수 있다는 어쭙잖은 확신이 아이에겐 유독 통하지 않는다. 늘 새로울 뿐더러 늘 또 다른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면서 덜컥 겁이 난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내 품을 떠나는 긴 헤어짐을 해야 할 때 속울음을 삼긴 채 그 뒷모습을 의연하게 볼 수 있을지, 아니면 아이에게 멋진 엄마의 뒷모습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오늘도 한 사람의 뒷 표정을 살핀다. 공감의 느낌표를, 호기심의 물음표를 더하면서…
하지만 정작 내 뒷 표정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이 없다. 유치하고 천박한 내 뒷 표정을 누군가 읽어내고 있을지 두려울 뿐이다. 당분간은 지금처럼 누군가를 먼저 배웅해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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