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기 전 선생님은 나에게 물었다.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아무거나 괜찮다 대답했다. 사실이었다. 하고싶은 게 없었으니 뭐든 괜찮았다. 그래도 생각해보라 선생님은 되물었다. 어른의 물음엔 대답을 하는 것이 본분을 다하는 것이었다. 미덕을 지키기 위해 답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보다 더 아이였을 때를 돌이켜 보았다.
흐린 기억보다 더 흐린 기억 속에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하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미술 학원에 가고 싶다 말했지만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태권도장을 다녔다. 아이가 사생대회에 나가고 싶다 말했을 땐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백일장에 나가야했다. 흐린 기억 속의 아이는 더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두 번의 반려만으로도 아이는 조용해졌다. 조용함이 반항으로 읽힌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아이는 괜찮다 말했다. 괜찮다 말하는 아이를 어른들은 어른스럽다 말했다. 아이는 언제나 괜찮다 말하는 아이가 되었다.
선명한 기억 속의 아이는 어른의 말에 따라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아이에게 어른들은 물었다.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아이, 아니 어른은 대답할 수 없었다. 괜찮다는 말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어른에겐 물어볼 어른이 없음을 그제야 알았다. 먼저 어른이 된 아이들도 정답을 알지 못했다. 어른은 앞이 깜깜했다.더는 따라야 할 어른의 말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이 분명 있었을 텐데 흐린 기억보다 더 흐린 기억 속의 아이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선명한 기억 속의 아이만이 괜찮다. 괜찮다. 말할 뿐이었다.
괜찮지 않았다. 괜찮단 말 대신 싫다 말할걸. 괜찮단 말 대신 좋다 말할걸. 뱉지 않은 말은 효력이 없었고 뱉은 말은 효력이 없는 말이라 나의 말은 언제나 힘이 없었다. 힘 없는 말들이 모여 나는 힘 없는 어른이 되었다. 하고 싶은 것 하나 없는 어른이 되어서야 괜찮지 않다 소리내어 말했다. 좋다. 싫다. 아무리 말해도 앞이 캄캄한어른들은 서로를 보지도 듣지도 않았다. 분명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괜찮지 않다 말하는 어른은 어른스럽지 못하단 소리를 들었다. 어른은 금세, 다시 괜찮다 말했다. 어른스러운 어른으로 남기위해 아무도 듣지 않는 말만 되풀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