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설익은 삼겹살
“어디 봐봐, 이거 봐 이거! 제대로 익히랬잖아! 돼지고기 바싹 안 익혀 먹으면 큰 일 나는거 몰라?” 한 점 집어든 삼겹살을 엄마는 쏙 뺏어다 불판에 도로 올려놓았다. 후, 난 바싹 익힌 거 안 좋아하는데.
이전에도 두툼한 놈으로 골라온 삼겹살을 쫄아들 정도로 구워놔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속살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한 바삭함. 내가 이러려고 통삼겹을 산 게 아닌데.
먹어도 문제 없다는 내 말에 엄마는 어디 증거를 가져와보란다. 나는 주저없이 갖고 있던 스크랩을 읽었다. “89년 이후 돼지의 낭미충 감염사례는 발견된 바 없습니다. 갈고리촌충과 그 유충이 사람 몸 속에 있다가 대변을 통해 유출되고, 그 인분을 먹고 자란 돼지를 사람이 먹게 되면 장 속에서 다시 알을 까고 유구낭미충으로 성장하는 구조인데, 인분을 돼지사료로 쓰는 곳은 90년대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기생충이 인체에 해를 끼칠 통로 자체가 사라진 셈입니다!” 회심의 미소를 띈 내 말이 끝나자 엄마는 말 없이 밥만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랑해진 고기를 몇 점 들고 침묵이 조금 지났을까, 나는 슬쩍 젓가락을 내려놓고 글 말미의 내용을 읽었다. “기존의 기생충 위험은 줄어들었지만 고기를 익혀먹는 것은 권장되는 사항입니다. 대장균이나 일반 병원성 세균 등의 위험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죠. 충분히 익혀먹는 것이 더 올바른(힘주어 읽는다) 식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치를 보니 엄마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고기들은 다시 바삭해진다. 살짝 후회가 밀려올 쯤, 쭈그러들 모양이 된 고기들을 엄마가 후딱 덜어낸다. 본인에게 익숙진 박자를 벗어난 듯 어색한 서두름. 합의가 이루어진 모양이다.
밥을 다 먹고 우리는 백화점에 가기로 했다. 연말이라 아들과 쇼핑도 하고 장도 보고 싶단다. 저녁이 다 되면 또 식탁 앞에 마주앉아 두런두런 이야길 나눌 것이다. 11시 25분 쯤이나 될까. 귤에 붙은 흰 실을 떼는 나와 떼지 말라는 엄마의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