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보수 중입니다
일 년의 시작과 끝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영속적인 시간 속에서 내 삶이 갑자기 단절되지 않는 한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데 그 안에서 굳이 작은 시작과 끝을 나눠 몸과 마음을 리셋하는 것은 꽤나 불편하다.
아니다.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호기롭게 세운 크고 작은 목표를 어김없이 달성하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과 자괴감, 그럴듯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중압감, 거대한 목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약한 의지와 능력을 매년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굳이 엄격한 기준선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게 좀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여하튼 난 시끌벅적한 연말, 텐션을 마구 끌어올려야 하는 연초라는 그 시간의 경계선에서 예민하게 굴고 싶지 않아 했다. 일 년 365일을 뚝 잘라 구분 짓기보다는 덤덤하게 하루하루를 쌓아 올리고, 그 사이에서 치밀하게 계획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솟구친 의욕에 휘둘려 과감한 목표를 세우든지 해서 성취의 기쁨을, 과욕의 아픔을, 때론 저항할 수 없는 게으름을 한탄하는 것을 훨씬 선호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시간의 단절성을 흔쾌히 인정하며 ‘끝과 시작’의 잣대를 자발적으로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왜라고 묻는다면 낯선 나와 친해지기 위해서라고 답을 하려 한다.
돌이켜보면 난 내게 혹독했고, 유독 차갑게 굴었다. ‘괜찮아, 그만하면 충분해’라고 다독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보다는 ‘왜 그래? 좀 더 잘할 수 있잖아. 아직은 부족해’를 외치며 끊임없이 다그치고 또 다그쳤다. 날 향한 잣대가 매우 엄격했고, 높았던 셈이다.
모든 면에서 평범하지만 평범한 범주에 머무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매번 갈망하는 대상을 찾기 위해 열을 올렸고 그런 다음에는 그것을 따라가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와의 거리는 한참 멀어졌다.
그랬던 나였다. 하지만 올해 유독 나를 찾았다. 자아 성취라는 그럴듯한 목표를 정하고 발버둥 치며 일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의 에너지 누수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고,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에서 마음의 배터리가 급속도로 닳아가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원래 마음의 배터리 용량 자체도 크지 않은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난 누구, 여긴 어디?’라는 꽤나 원초적인 질문을 마주했고, 그때부터 오랜 시간 동안 모른 척해왔던 날 열심히 찾아 헤맸다. 철저하게 소외된 채 어둡고 깊은 마음 한 구석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나를 말이다.
가장 먼저 날 향한 험담을 시작했다. 인간관계에 더없이 어설프고 옹졸할뿐더러 끝없이 남의 시선을 훑고 또 훑으면서 눈치 보기에 열을 올리는 소심한 나, 일에 대한 열정을 외치면서도 계획대로 잘 되지 않으면 변명거리를 찾은 뒤 적당히 타협하며 가던 길을 중도 포기하는 나, 남들과 같은 든든한 조력자를 갖지 못했다고 끊임없이 불평하는 나, 의연한 척하면서 사실은 남에 대한 유치한 질투를 거두지 못하는 나, 용기가 아니라 책임감이라고 강조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나…
어김없이 나를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예전처럼 민낯의 나를 부정한 채 내팽개치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날 향한 비난 섞인 일방적인 험담은 조금씩 잦아들면서 건조한 시선을 통해 나를 훑기 시작했다. 마치 남을 대하듯 말이다. 만약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난 나와 영원히 결별한 채 미아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있지, 그나마 최악은 아니네’라는 자조적인 평가에서 ‘그렇게 애쓴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아.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라고 작은 위로를 건넸다. 인간관계의 확장성은 없지만 관계의 깊이는 인정할 만하다고 나의 내향적인 성격을 토닥였다.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욕심 때문에 고단하다가도 이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안주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럴듯한 포장도 해봤다.
하지만 아직은 거기까지다. 아직 난 나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다. 알아가고 있을 뿐이다.
난 여전히 내게 끊임없이 묻고 있다. 나와의 일문일답, 꼬리에 꼬는 무는 질문을 통해 나와 친밀해지고 있다. 뒤늦은 사춘기라고 딱하게 여겨도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수용이 아닌 체념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2022년 12월 28일, 오후 11시 25분. 올해 끝자락에서 난 나를 뚝딱뚝딱 보수하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말이다.
2023년 1월 1일에도 난 어김없이 나를 보수하고 있을게 틀림없다.
가깝고도 가까운 나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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