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찬은 딱히 가게에 대해서 알아보고 다니는 친구는 아니었으나, 별다른 계획 없이 무작정 방문하다가 내가 좋아할 법한 공간을 찾게 되면 문득 알려주곤 하였다.
원찬에게 소개받은 곳은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카페였는데, 멀지 않은 거리에 자리 잡고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경험해볼 수 없으니까. 그 카페는 해밀턴 호텔을 기점 녹사평역 방향으로 이어지는 번화가 거리 끝 자의 좁은 골목길에서 열아홉 걸음이면 도착하였는데, 외관을 보아하니 옛날에는 주택이었던 카페였었다. 원래 주택이었던 건물이라서 그런지 창문의 크기와 높이, 천장의 높이, 가구의 위치에서 아늑한 기분이 들어 커피를 마시기 전부터 마음에 들었다.
카페에 들어서서 자리를 안내받은 후 메뉴가 적힌 종이와 차가운 물을 한 잔 받았다.
메뉴를 들여다보는데, 지금까지 내가 마셔본 에스프레소 메뉴가 없었기에 당황스러웠다. 메뉴에는 드립 커피뿐이었는데, 나는 드립 커피를 맛있게 마셔본 기억이 없기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커피 한 잔의 가격이 7천 원으로 맛있는 커피를 찾는 도전을 하기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라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나는 카페 매니저에게 커피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유행하는 것들로만 가득 찬 메뉴가 아니어서 기대되었다.
메뉴를 찬찬히 살펴보니, 내가 기피하는 유명하거나 유행하는 것들로만 가득 찬 메뉴가 아니라 기분이 좋았다.
메뉴에 대한 설명을 듣고 평소에는 잘 마시지 않는 드립 커피를 한 잔을 주문하였다. 내가 주문한 커피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원두였는데, 난 이 원두의 이름을 너무나도 쉽게 외울 수 있었다.<Shiferaw Kurse(쉬파로우 쿠르세)> 원두의 이름이다. (사실 한국의 욕과 비슷한 발음이었기에 그렇게 느꼈을지라.)농부의 이름을 붙인 원두이고 향과 맛에 관해서 설명을 친절히 해주셨지만, 설명해주는 맛과 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그저 이름이 특이해서 마셔보기로 했다. 주문받은 매니저는 저울을 이용해 원두를 개량하였고 작고 네모난 그라인더에 넣어서 분쇄하였다. 내가 경험한 그라인더들은 묵직하고 굉음을 내는 것들이 많았는데, 외관이 작고 귀여웠으며 소리도 작게 났었다. 분쇄가 끝난 후 그는 나에게 향을 맡아보라고 권해주며 방금전에 설명해준 향들에 대해서 한 번 더 얘기해 주었다. 여러 가지 향들에 대한 설명이 있었지만, 딸기향에 대한 기억만이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분쇄된 원두에서 딸기향이 너무 분명하고 달콤한 향기로 강렬한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맡아본 모든 원두의 향은 구매 당시 분쇄를 모두 해버린 원두였기 때문에 과일 향기가 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순간 나는 지금까지 가져온 생각이 바뀌었다. 이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커피에서 과일 향이 난다는 게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끊임없이 향을 찾으려고 집중하지 않아도 그렇게 선명하게 향이 날 수 있다니. 연한 갈색빛의 원두가 순간 분홍빛이 묻어있게 보일 정도로 강렬했으니 말이다.
분쇄된 원두의 향을 맡게 해준 그는 저울 위에 커피 서버를 올린 후 그 안에 얼음을 넣고 드리퍼와 종이 필터를 올린 후 방금 분쇄해둔 원두를 부었다.
그리고 미리 가열해둔 핸드드립용 전기 주전자의 물을 천천히 4번에 걸쳐서 부었는데, 나는 이렇게 개량해서 내리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여서 이것저것 질문 공세를 하였다.
얼핏 보니 얼음도 개량한 것 같은데 얼음도 개량하신 게 맞는지 물을 나눠서 붓는 것은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 원두를 뜸 들이는 시간은 얼마나 가지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다 보니 어느새 커피가 준비되었고 커피 서버와 얼음이 담긴 컵을 함께 내어 주었다. 커피를 내리기 전 서버에 담겨있던 얼음은 모두 녹아서 사라졌고 차가운 커피가 되어있었다. 지금까지 마셔온 커피와는 다르게 짙은 갈색빛의 커피가 아니었다. 딸기향이 강렬하게 났기 때문일까 체리 빛이 띄는 것만 같았다. 커피는 산미가 있다고 하였는데, 마셔본 결과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본 신맛에 가까운 커피가 아니고 정말 ‘산미’라고 표현하기에 적합한 맛이었고 쓴맛보다는 약간의 단맛이 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