뱉어내지 못한 아픈 생각을 꾹꾹 눌러가며 마음 한구석에 켜켜이 쌓아놓기만 하면 결국 지쳐버린 마음은 복수를 하고야 만다. 마음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고, 그 내구성에도 한계점이 있을 테니까. 마음이 무겁다, 아프다, 티를 내도 무시하고 강해지자는 무책임한 결의만 다져왔다. 그리고 자연스레 시간에 빌어 회복되었다고 치곤 했다. 그렇게나 많은 스크래치가 난 줄도 모르고.
100bpm
심장박동이 좀 거슬리게 울렸다. 그럴 만한 사유는 없다고 칠 수 있어 무시했다.
어차피 그다지 큰일은 아니었다. 여기에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고, 나만 겪을 법한 스트레스 사유라고 할 수도 없었다. 회사원이 어떻게 불만이 없겠어, 다 참고 그러려니 넘기는 거지., 하고 또다시 무책임한 위로 한마디를 스스로에게 넌지시 건넸다. 현재의 불만을 생각 뒤편으로 대충 구겨 던지고 사무실 의자에 앉았다. 의연하게 넘겼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난데없이 눈 밑이 찔리듯 아프더니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슬프다느니, 힘들다느니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갑자기 쏟아진 눈물은 전혀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다행히 검은 마스크가 눈물을 받아내 누구에게도 들키지는 않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보다, 하고 대충 눈물을 닦고 하던 일로 돌아오려 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의 둑은 수많은 시간동안 몰래몰래 늘려온 스크래치를 한꺼번에 터뜨려버렸다.
130bpm
또다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겁이 났다.
심장이 한층 부산스러워졌다. 놀란 마음을 다잡으려 하자, 긴 시간 마음에 꾸역꾸역 밀어 넣어놨던 문장들이 요란한 심장 박자에 맞춰 우수수 쏟아졌다. ‘벌써 이게 몇 개월째야. 팀장이 틈만 나면 비아냥거리는 걸 언제까지 마냥 들어야 해?’ ‘물어보면 대답 좀 해 주면 어디 덧나? 왜 이렇게까지 텃세를 부려.’ 아니야, 겨우 이런 생각으로 이렇게까지 흔들릴 필요 없어.
155bpm
‘아니, 울어.’
이번에는 후두둑,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마치 수도꼭지라도 틀어놓은 듯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마스크도 이젠 더 받아내고만 있기는 힘들었는지 들어오는 눈물을 그대로 마스크 밖으로 뱉어버렸다. 심장 소리는 점점 더 커져 사무실에 있는 누구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빨라지는 심장박동 횟수마다 눈물샘에 자극이 왔다. 마치 누가 눈물을 흘리라고 자극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울어, 울어, 울어…
170bpm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생각이 쏠리다 못해 굳이 지금의 일이 아닌 순간의 감정마저 몰아쳤다.
180bpm
‘겨우 이렇게 살자고 지금까지 이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온 거야?’
195bpm
노력의 보상이 겨우 이거면 내가 뭘 더 해내야 했던 거야?.’
220bpm
‘할 수 있는 게 없어’
‘울어’ ‘울어’ ‘울어’
왈칵, 구역질이 밀려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 구역질과 함께 뱉어낸 수많은 생각은 속절없이 흐르더니 이내 과거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눈을 뜨지 않아도 내가 심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캐비닛 뒤편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순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구나.
과거로부터 숙성된 원망들이 터져 나왔다. 심장은 박자에 가속도를 붙였다. 활기를 얻은 불만은 리듬을 타고 신나게 흘렀다. 심장의 찢어질 듯한 울림에 자극을 받다 못해 찢어져버린 눈물샘은 이미 고장이 났다. 조금 더 나를 돌보면서 여기까지 왔어야 했던 건데, 미안해, 미안해… 자책속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눈물의 사죄를 쏟았다. 긴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결국 캐비닛 뒤에서 무기력하게 감정에 패배하던 시절과 달라진 건 없었다. 그렇게 점점 현실로부터 고립되어갔다.
아니, 캐비닛 뒤와 지금의 차이점을 찾자면 한 가지가 있긴 했다.
몸을 털고 일어나 찬물로 세수를 했다. 보이지 않아도 덕지덕지 온몸에 묻어 있는 것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이 조금씩 느껴졌다.
아마도 투명 고양이의 털이었다.
180bpm
두 번, 세 번, 반복한 찬물 세수에 토하듯이 기침이 튀어나왔다. 중간중간 구역질이 섞인 게 꼭 헤어볼을 토해내는 고양이의 꼴과 비슷했다.
150bpm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지만, 심장이 온전히 돌아오진 않았다. 마음의 민원은 계속 한 문장 한 문장 쏟아져 둥둥 울리는 박자에 맞춰 머릿속의 생각을 갉았다.
눈을 떠 현실을 직시했다. 여긴 캐비닛 뒤가 아니고, 나에겐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오늘 하루를 현실 속에서 과거로부터 지켜낼 의무가 있었다.
140bpm
숨을 크게 들이켰다. 물로 씻어 깨끗해진 투명고양이의 털을 들이마셨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온몸에 가득 들어차 있던 아픈 생각에 정제된 투명털을 겹겹이 발랐다. 그리곤 눈물샘까지 공백으로 켜켜이 쌓아 채웠다. 불필요한 생각들이 얼추 투명해졌다. 이렇게 눈속임으로 비워낸 마음이 또다시 사무실에서 본래의 모습대로 터지지 않게 할 필요가 있었다. 목뒤를 쓸어 긴장을 풀었다. 뒷목이 이렇게까지 굳어버린 것을 보니 오늘은 거미 한두 마리가 집을 지은 게 아닌 듯했다. 한 번에 모든 거미줄을 끊고 거미 전부를 해치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대신에, 무너진 거미집 사이로 도망치는 거미 한 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들어 심장에 풀었다. 거미는 거미줄을 들고 심장을 한 땀 한 땀 꿰매 단단히 동여매었다. 아마도 집에 가기 전까지는 버텨줄 것 같았다.
심장 속도가 더 줄어들지는 않았다. 대신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심장의 박자와 맞출 수 있는 음악을 틀었다. 음악은 고막을 타고 흘러 투명 고양이 털마다 붙었다. 가사 하나, 박자 하나에 온전히 집중을 했다. 그래야 겨우 비워낸 마음에 또 다른 불필요한 생각이 치고 올 틈이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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