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체부동까지 내려와 ‘성결교회’와 ‘다락 만성당’을 지나쳤다. 오래되어 때가 탈수록 더 고풍스러워지는 벽돌 건물처럼 쌓인 것에는 일정한 아우라가 생긴다. 미래를 바라보되 그렇다고 과거를 무가치하다고 여기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체부동 골목에서야 상사와 주고받았던 대화가 다시금 떠올랐다.
“이쪽 업계는 자격증이 없으면 자리가 없지. 나이가 들면 특히 더 서러워.”
상사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였다. 사실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렇게 6년이 지난 후 같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여전히 자격증이 없었다. ’열심히 산 줄 알았는데 남들 하는 만큼도, 그것보다도 덜 했구나 나는.’ 이력서에 쓸 한 줄의 경력과 미뤄둔 감정들만 내 뒤에 뭉쳐 있을 뿐이었다.
뭉친 걸 먼저 풀어내야 자격증이든 뭐든 달려들 힘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사직동을 걸으며 하나하나씩 뭉쳐낸 걸 풀어내려 했다. 마치 수십 장이 겹친 셀로판지를 한 장 한 장씩 떼어내어 정확한 색깔을 바라보는 것처럼. 6년 치의 뭉치는 끝이 없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또 사직동으로 나선다. 흔들리는 삶을 다시 굳건히 다잡기 위해. 늦는 것들이 모여드는 동네로 오래오래 남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랫동안 낡아가면서 말 없는 위로를 주는 곳으로.
융진, <걷는 마음>
잡을 수 없는 지난 날처럼 쏜살같이 사라져
그 누구도 위로 못 할 이 마음 속을 헤매이네
어디로 가는지 알아도 달라질 건 없네
무심한 척 걷는 이 길 위에선
흘러내리는 눈물 따위 티내진 말아야지
그 누구도 위로 못 할 이 마음 속을 걷고 있네
헤매이네 떠오르네 또 걸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