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살(地殺)이라고 하더라.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영영 떠돌아야만 하는 나의 운명.
정말이지, 이 세상에는 내가 발을 디뎌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곳이 전혀 없었다. 이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매 순간을 헤매야 했고, 드디어 내 땅을 찾았노라고 종지부를 찍어보려고 하면 어림도 없다는 듯이 지각이 크게 뒤틀렸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검은 우주로 튕겨 나갔고, 어딘가에 닿길 간절히 바라며 홀로 흩날리듯 다음 도착지를 찾아 헤맸다.
이 큰 우주에서 나를 위한 별이 단 한 개도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이렇게 나라는 존재는 불안정하게 검은 세상을 아프게 부유하고 있었다. 큰 것을 바라지 않았다고 늘 생각했다. 단지 한 발이라도 좋으니 내가 머물 수 있는 곳을 줘. 안정을 느끼고 싶어.
하지만 어떤 별의 중력도 나를 끌어당기지 않았다.
무(無)였다. 내가 속한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단지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과 외로움, 공백감, 그리고 눈물 등등. 비어있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감정들에 절여지고 있을 때, 나는 내 감정에 모습과 이름을 붙였다. 비어있는 세상 속에 유일한 나의 것들은 겨우 그런 아픈 심경 뿐이었으니.
제법 또렷이 보인다 싶을 정도로 정성껏 빚어냈고, 나름의 성질과 이야기 또한 구체적으로 만들었다. 어릴 적 들은 미신 같은 이야기에 따르자면, 없는 것에 애정을 부으면 저가 실존하는 줄 안다지. 내가 새로 정의한 감정들은 그렇게 어설프게 그려낸 형체를 끌고 비어있는 나의 세상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리하여 저 혼자 어디선가 놀다가 내게 다시 다가와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그 존재감은 점점 선명해졌다. 처음 그랬듯이 손을 뻗어 내가 그려낸 작은 괴물 같은 감정들을 조심스레 잡았다. 그리고선 나의 세상 밖, 우주 멀리 던져버렸다. 시커먼 우주 어딘가로 사라지는 걸 보며 나는 극복했다, 라고 말했다. 이겨냈다. 내가 해냈다. 이렇게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아내서 마침내 이기는 방법까지 알았다.
그런데, 감정들은 나를 중력으로 여겼다. 결국 내 안에서 만들어낸 것들이라 그런가 보다. 끊임없이 나를 향해 되돌아왔고, 그럼 나는 내 다른 감정들 - 불안한 자신감이라든가, 경직된 용기라든가, 혹은 잠시간의 도피성 망각 등 - 을 급하게 빚은 후, 돌아와버린 감정에 붙여 다시 세상 밖으로 내던졌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고, 다시 감정을 붙여 던지면 그대로 다시 돌아오고... 어느 순간, 나에게로 날아오는 그 무언의 심경 집합체는 가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이 불어있는 상태였다. 결국 내가 유기한 나의 일부분, 부정하고 싶은 평생 반려의 대상. 반려 감정들이 뒤얽혀 나를 향해 돌진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지만,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코앞까지 무거운 반려 감정이 날아왔다. 나는 곧 저 덩어리들에 맞아 부서지고 말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