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항상 나에게 무언가 서운해했다. 본인의 기대만큼 움직여지지 않는 나를 보며 서운해했고 ‘나에게는 당연히 이렇게 해줘야지’ 같은 본인만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길이 없는 나는 그 기준에서 벗어날 때면 항상 당신을 서운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서운해하는 당신을 보고 있는 게 마음이 아파 나도 모르게 또 당신을 서운하게 만들어버릴까 늘 눈치 보고 살피는 사람이 되었다. 언제 또 무엇 때문에 당신을 속상하게 만들까 봐 매 순간을 곱씹고 돌아보고 내가 한 말을 돌아보는 자기검열이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한 모든 행동이 나를 생각한 행동이 아닌 당신에게 어떻게 보이고 들릴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사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당신이 서운해하지 않을 일이었고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틀에 갇혀 서서히 나의 자유를 잃어갔다. 소중한 당신이 속상하지 않았으면 해서 사랑하는 당신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해서 당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당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을 하며 맞춰갈 때에도 나는 계속해서 당신을 서운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동력을 다해 당신을 위해 세상을 움직여도 서운해하는 당신을 보며 그 서운함이 내 몫이 아니란 걸 알아차렸다.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서 무언가를 못 해줘서 서운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이었고 더는 서운해하지 말았으면 해서 나를 버리고 당신에게 맞춰간 것이 오히려 당신의 기대를 점점 더 부풀리고 키우는 꼴이 되었다. 내가 없이 당신을 위해 맞추는 삶은 기대감을 키워 당신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었고 나를 지키면서 당신의 기대감이 더 커지지 않는 우리를 위한 선택은 둘이 함께하지 않는 것이었다. 서운한 감정이 나에게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커서였다면 기대를 부숴야 했다. 나에게 실망하기를 바랐다. 당신과 영원히 함께 할 것처럼 기대감을 잔뜩 심어 줬던 내가 서운함을 발견한 순간 그 커다란 기대가 버거워 나를 지키려 도망쳤다. 당신은 이런 나의 선택을 이해받길 바라는 것은 사치이고 욕심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하기에 당신이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기대와 서운함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서 영원히 당신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서 나를 지키고 나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사치라고 한다면 난 영원히 사치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도망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나부터 지키고 챙기는 일은 옳은 선택일 것이다. 생각이 많은 나를 싫어했다가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똑같은 것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불행이 있어야 행복도 존재 하는 것처럼 도망 때문인 나와 당신의 분리가 있어야 행복이 존재하고 나의 도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아주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