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이상적인 어른은 없는 것 같다는 그런 결론 앞에서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꽤 오랜 시간 한 종교를 갖고 종교인들을 만나는 생활 반경 안에 살다 보니 확증편향을 경계할 수 있는 모임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종교나 지인뿐 아니라 내가 읽는 책을 다 털어도 2030 작가들의 작품들을 벗어나지 않기에, 간혹 모임에서 40대 이상의 어른들과 함께할 때는 뭔가 다른 얘길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조금씩은 하는 편이다.
여러 차례 책을 읽거나 나눔을 해본 뒤에 느낀 것은, 음, 결국 어른들도 그다지 우리와 다른 특별한 사유를 품고 사는 것 같진 않다는 점이다. 진심으로 아름다우세요 하하, 칭찬을 한 동기에게 업무 칭찬으로 미친듯이 보답하던 차장님. 존경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때때로 기분이 태도가 되기도 하는 부모님. 유치하고 치사하게 얼렁뚱땅 굴러가고 있는 회사. 그들을 볼 때마다 이 거대한 세상이 이따위로 돌아가고 있는 거였다고? 숨을 헙 들이키기도 했다.
어른들을 대하면서 감사한 일도 있지만 이상적인 어른의 정의와 상충하는 상황에 대한 의문, 때로 환멸을 느끼는 경험이 늘어갔다. 친구들은 더 이상 어른은 없는 것 같고 멘토랍시고 부를 사람이 구조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많이들 내리는 것 같았다. 누구보다도 그럴듯한 어른, 기댈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누군가를 그토록 기다려온 내게 실망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외부에서 어른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게 그간의 결론이라 할지라도 평생 애로 살아갈 생각을 하면 또 멋쩍은 곳이 한국 사회다. 완벽한 어른은 될 수가 없다고 해도, 어디에나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도 없는 어른 그 무언가에 비슷한 모양새라도 할 수 있어야 멀쩡한 인간 정도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흔히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돈 많이 벌어 맛있는 것을 꼭 사주겠다는 인사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부모님께 오마카세도 척척 사줄 수 있고 비싼 위스키 집에서 카드를 척척 내밀 수 있으면 좋겠다… 열심히 살자… 그런 말들을 하며 오늘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정의했던 것이다. 그런가? 그러면 우리가 확실히 어른 비슷한 것으로 환골탈태해나갈 수 있단 말인가?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보긴 하는데, 그래서 막혀 있던 상황들을 타개하기도,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무언가에 가서 닿기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만 해도 너무 힘들다는 것이 나의 또 다른 결론이었다. 인생이, 마음처럼 안 되었다.
어려운 일은 세상에도 많았지만 내 안에도 너무 많았다. 이를테면 내 공간과 몸, 마음, 관계를 잘 정돈하고 깨끗이 유지하는 일. 세끼 밥을 잘 차려 먹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머리도 되도록 잘 감고, 일하면서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스트레스 수준으로 균형을 잘 잡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과정 중에서 나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느낄 수만 있으면 대충 어른이라고 취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제할 수도 없으면서 외부에 어떤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앞에 서술한 것처럼 세상과 어른들에게 실망하다가도 확고하게 갖게 된 의지의 문장이 있다면 ‘이런 건 물려주지 말자’하는 거였다. 선배들이 괴롭히고 어른들은 무시한대도 나는 후배들에게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내가 하는 말을 사람들을 통해 다 들으면서 무언가라도 해볼라치면 바꾸려들지 말라고 무안을 주던 선배들이 있었다. 은근한 왕따였던 나는 매일 집을 혼자 오가면서도 청년부에 갓 올라온 20살 친구들을 위한 이벤트를 두번이나 열고 모임장으로 지원해 선배들과 신입생들의 연을 끊어버렸다. 부디 이들은 어른들에게 보아야할 것만 보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면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별 도움 안 되거나 피해만 끼치는 선배였을지라도, 모두가 필요로 하는 어른이 되진 못하더라도, 절대로 물려주지 말아야 할 모양새가 있을 때마다 나는 다시 다짐한다. 이건 물려주지 말자, 하고. 그런 마음이라면 나를 외롭게 두었던 어른들처럼 되진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나의 뒤에서 도와주셨던 분들처럼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뻔뻔하게 품어보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