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어떤 꿈을 꾸나요
끝이 없는 오르막길을 걷고 또 걷는다. 오싹할 만큼 적막하지만 간간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숨이 막힐 만큼 앞은 캄캄하다. 답답한 마음에 눈을 비비고 또 비벼보지만 시야는 더 흐려질 뿐이다.
계속해서 걷고 있다. 오르막 끝까지 단숨에 달려버리려 하지만 욕심과는 달리 한 발을 떼는 것조차 힘들다. 그러다 문득 한쪽 신발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가파른 경사 길을 빨리 올라야 한다는 생각과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야 하는 생각이 뒤엉켜 숨은 더욱더 가빠진다. 당혹감과 불안함에 잔뜩 짓눌려 그런지 온몸은 이미 땀범벅이다.
애를 써도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오르막을 내딛는 걸음은 더 둔해졌고, 눈앞은 더 어두워졌다. 여전히 한 발은 맨발이다.
너무 무겁다. 너무 답답하다. 너무 불안하다. 아… 어떡하지?
새벽에 눈을 번쩍 뜨고 한동안 숨을 고른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꿈이라 정말 다행이라고 수없이 되뇌고 되뇐다. 달콤한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꿈도 있는데, 이 고단한 꿈의 잔상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깊이 남는다.
고백한다. 이 불편한 꿈은 이미 내게 익숙한 레퍼토리다. 꿈을 꾸는 간격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꿈의 의미도 진작에 알고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신없이 달렸다. 사회생활 첫 출발선에서 야심 차게 정했던 도착선은 매번 새로운 출발선으로 다시 세팅했고, 그런 결정 이후부턴 숨을 꾹꾹 참고 내달렸다.
과속하느라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볼 겨를조차 없었고, 가끔씩 화려한 사인만 언뜻언뜻 확인될 뿐이었다. 치달리는 날 향한 응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지만 난 가속 페달을 밟는 데만 집중했다.
어느 순간부터 무엇을 향해 질주하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빨리 달리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극도로 긴장감 넘치는 과속을 이어갔다. 시야는 뭉개졌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차의 뒤꽁무니를 바짝 쫓다 사고가 날뻔했고, 기어이 앞서 나갈 때면 추월의 쾌감은 잠시, 어김없이 수많은 차들이 나를 교묘하게 가로막았다.
여기저기서 과열 신호가 켜졌다. 하지만 왜 더 빨리 달릴 수 없는지를 두고 한동안 자책했다.
하지만 이런 스토리의 끝은 뻔하다. 막다른 길 앞에서 좌절하거나 그전에 큰 사고가 나거나… 아무리 잘 포장한다 해도 결말은 비극 쪽에 가깝다.
아직 다행히 큰 사고는 나지 않았다. 어떤 물리적인 힘 때문에 억지로 탈선한 것도 아니다. 크게 다쳐 병원에 실려가지도 않았다.
최근 들어 유독 더 자주 꿈에 시달린다. 더는 모른 척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왜 갑자기 지금?’이라고 묻는다면, 좀 억지스럽더라도 문득 겁이 났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믿는 신이 도대체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아니면 가당치도 않은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나에 대해 결단을 내린 건지, 여하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난 갑자기 무서워졌다.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브레이크는 작동하는지, 동행하는 사람은 있는지, 누군가의 삶의 목표, 누군가의 열정을 너무 열심히 기웃거리다 못해 이를 내 것 인양 착각하는 건 아닌지…
그렇다고 갑작스레 브레이크를 밟고 길 중간에 갑자기 멈춰 설 용기는 없다. 나 때문에 다른 차가 연쇄 사고가 나는 것을 바라진 않는다. 그렇다면 비상등을 켜고 과속 차선을 벗어나는 게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신은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이러한 상투적인 질문에 어떤 이는 자신의 활활타는 열정을 녹여낸 뜨거운 자아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매번 컴컴한 꿈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힘겹게 내딛는 고단한 나를 끄집어냈다.
당분간 속도를 늦춘 채 서행하려 한다. 그러다 맘에 드는 출구를 찾는다면 잠시 현 경로를 이탈할 테다. 그 과정에서 나를 사랑하든, 나를 부정하든, 내게 시선을 맞추며 다음 목적지를 결정할 계획이다. 물론 속도는 절대 높이지 않을 테다.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이자, 어떤 길의 시도이자, 어떤 오솔길의 암시이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신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데미안의 시선, 이제는 나의 시선으로 조금씩 옮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