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거리를 걸었더니 금세 양말이 젖었다. 얼마 전부터 뒷굽이 닳은 느낌을 받기는 했었는데. 이제 이 신발도 오래 신지는 못할 것 같다. 이제 마지막 신발을 꺼낼 때가 왔구나.
나이키 포스와 팀버랜드 롤업. 특별한 이벤트가 없을 땐 항상 이 녀석들을 신어왔다. 둘을 합하면 10년 사이 10쌍은 되려나. 친구들은 발에 가시라도 달렸냐고 했다. 워낙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닌 탓에 1년을 넘기지 못하기가 일쑤였으니.
두 녀석은 달랐다. 내 뾰족한 발을 잘 견뎌주었다. 여행 중엔 산을 다닐 때가 특히 많았는데, 보통 산도 아니고 기암괴석이 즐비한 험한 지형에 대중없는 내 걸음을 용케도 버텨주었다.
요즘도 나는 포스와 롤업을 애용하고 있다. 이번에 굽이 닳은 롤업은 국내 판매가 없어 귀국할 때 2쌍을 새로 구매해 가지고 들어왔는데, 원래 신고 있던 녀석은 5년 전에 망가졌고 이제 그다음 녀석 차례가 온 것이다. 나의 투박한 발걸음을 마지막 녀석은 얼마나 인내해줄까.
장관을 마주할 때면 신발을 내려보는 습관이 있었다. ‘이 장면도 너를 신고 보는구나.’ 감동할 땐 뭐든 기꺼운 마음이 들어서일까. 거기까지 나를 인내해준 게 참 고마웠다. 나 홀로 여행일 때 특히 더. 수많은 설산과 절벽, 사막과 협곡에서 늘 발치엔 녀석들이 있었다.
롤업을 내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그때의 나는 좀 더 천천히 걸을 수는 없었을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일 순 없었을까.' 문득 포레스트 검프의 말이 떠오른다. "Mama always said there's an awful lot you can tell about a person by their shoes(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엄마는 말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