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다. 할머니가 계신다는 요양원에 찾아갔다. 요양원으로 가는 길목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출입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요양원이라 밖에서 호출을 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방문자 목록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다. 조용하고 하얀 복도에는 요양원에 계신 분들의 사진이며, 그림들이 걸려 있었는데, 여기저기 둘러보며 할머니가 나오길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저 멀리서 요양사가 할머니를 휠체어에 앉혀 데려왔다. 처음엔 긴가 민가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강하고 무서운 사람이었기에 보러 오는 게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할머니 집에 맡겨져 거의 15년을 살았는데, 어릴 때 정말 많이 맞으며 자랐다. 할머니는 남아선호사상이 있는 사람이라 오빠는 가만히 둬도 여자인 나는 유치원 때부터 밥을 짓게 하고, 집안일이며 궂은일을 시켰다. 뭐든 잘못했다 하면 할머니 손이 바로 날아왔다. 귀싸대기를 하도 맞아서 귀가 먹먹했다. 한 번은 자다가 새벽에 토를 했는데 할머니에게 또 맞을까 봐 몸보다 몇 배는 큰 이불을 질질 끌어다가 손으로 빨았던 적도 있다. 그야말로 내게 할머니는 거대한 산 같은 사람이었다. 먹을 거에도 굉장히 인색해서 라면 하나 끓여 먹으려 하면 너 주려고 갖다 놓은 게 아니라고 구박을 했다. TV에서 맛있는 거 잔뜩 차려주는 다정하고 인자하고 손주들이면 껌뻑 죽는 할머니들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그런데 내 앞에 뱀도 때려잡을 정도로 강하던 할머니가 공기가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져서 휠체어에 기대앉아있었다. 마치 아기가 된 것처럼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면 움직이기도 버거워 보였다. 그리고 나를 알아보겠냐고 물었지만 잘 듣지 못했고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슬펐다. 처음엔 서로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간은 가고 있었다.
그러다 할머니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줬다. 굉장히 낯설었다. 할머니와 마주 앉아 손을 잡아 본 게 처음이었다. 할머니의 손은 딱딱하고 따뜻했다. 할머니는 나를 골똘히 쳐다봤다. 나도 할머니를 봤다. 할머니의 눈은 너무 깊게 패어 있어서 마치 눈꺼풀이 들려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의 코가 이렇게 생겼었나? 안 본새 검버섯이 더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새삼 할머니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참 그렇게 보고 있었는데 침묵을 깨고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너 참 곱다."
할머니에게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무언가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에게 나를 키워줘서 고마웠다고. 미안하다고. 잘 지내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이 말만큼은 들어줬음해서 크게 말한다고 말한 것 같은데 할머니에게 닿았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 앞에 있는 할머니는 걱정하나 없는 사람처럼 편안해보였는데 그에 더해 인자해 보이기까지 했다. 짧은 면회시간을 마치고 휠체어에 실려 멀어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그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살아생전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