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수고했어."
편의점에서 집까지 오는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마음이 맥주 뚜껑을 따며 말했다.
"갑자기?"
"내가 말했었지. 나는 너를 설득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그럴 수 없는 이유는 내가 네 마음이기 때문이야. 네가 내리는 모든 결정에는 그런 널 보는 내 의지도 반영되거든. 그래서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쉬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다만,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너와 단 한 순간도 떨어진 적 없는 내가 너한테 할 수 있는 건 인정과 질문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은 이제 별로 없는 것 같아. 다만, 그간 네가 노력했던 모든 순간과 네가 살아온 모든 시간 넌 최선을 다했고 그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수고했어 민호야."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맥주를 들이켰다. 과자 봉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맥주를 꿀꺽이는 소리만 정적을 비집고 들어왔다.
"좀 속상하고 슬픈 말이네요."
"끝까지 내가 함께하겠지만 모든 선택은 네 몫이라는 소리니까 네 입장에서는 한없이 무책임하게 들리겠지."
"그걸 알면서 어떻게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요? 내가 왜 죽고 싶었던 건지 알잖아요."
"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한고비를 넘으면 끝나는 게 아니고 죽을 각오로 한고비 넘을 때마다 자꾸 다른 고비들이 너를 기다렸으니까."
"진짜 죽여버리고 싶네."
남자는 얄밉도록 자신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마음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남자는 그런 마음을 향해 토악질하듯 소리를 질렀다.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고! 살아보겠다고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지고 목구멍에 진흙이 타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고. 처음에는 '그래,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도 있는데 이 정도는 견뎌야지' 그다음에는 '아, 또 야?' 그 뒤로는 '진짜 왜 나한테만 이러지?' 했어. 어디서부터 이 지리멸렬하고 난장판인 내 삶을 해결해야 하는 건지 가늠조차 안 됐다고!"
"..."
"어떻게 해야 나아지는 건지,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을지. 매일 답도 없는 질문들을 쳇바퀴 돌 듯하면서도 결국 난 어떤 답도 못 찾았어! 너도 다 알잖아. 씨발 진짜. 난 행복하지 않았고, 내 미래는 막막했고, 내가 사랑하는 것도 열정을 쏟을 것도 다 잃었어. 그래서 죽는 것 하나는 내 의지로 하려고 했더니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는 뭐? 죽음을 결심한 사람에게는 마음이랑 마주해서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줘? 이 새끼야 넌 그냥 위선자야. 마치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되돌아보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척하는데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거잖아."
핏대가 서고 실핏줄이 터져 눈이 붉어진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음의 멱살을 잡았다. 마음은 그런 남자의 손을 뿌리치지 않은 채 울먹일 뿐이었다.
"내 마음이라면서! 그럼 내가 안 죽게 도와줘야지. 나를 살게 해야지. 결국, 이 지옥 같은 현실에 내가 던진 그 많은 질문에 단 하나쯤은 답을 찾아줘야지! 내 머릿속만 헤집어놓고 선택도 행동도 책임도 내가 알아서 하라고? 그딴 소리나 할 거면 애초에 나타나질 말았어야지!"
마음을 잡아챈 멱살에 힘이 빠지고 남자는 주저앉아 울었다.
20.
"답은 이미 네가 내렸어."
비로소 진정되어 침대 맡에 기댄 채 멍하니 앉은 남자에게 마음이 말했다.
"답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필요한 거지. 내가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 괜찮아. 그런데 네가 나랑 있으면서 의미 있었다고 했잖아. 그 과정에서 넌 나름대로 네가 어떻게 할지 정했잖아."
"..."
"난 어쨌든 네가 결정을 내리면 내 모습은 사라져. 앞으로도 늘 너와 함께 있겠지만 네 눈에 보이지는 않는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야. 지금 넌 네가 정한 마음을 행동하기가 겁나는 거야. 하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남자를 이해하는 마음의 눈은 엄마 같았다. 안쓰럽게 보지만 한없이 포근한 눈빛이었다. 남자는 그래서 마음이 더 미웠다.
"사람이 세 가지를 다 잃으면 죽음을 결심한다고 했던 거 기억나? 넌 계속된 좌절의 경험으로 사소하든 크든 행복이 뭔지 잊어버렸어. 그리고 그 지옥 같은 현실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네 자존감도 다 잃었고. 끝내 네 노력이 부정당할 거라는 불안함 때문에 희망마저도 잃었어. 그런데 지금 그 셋 중 적어도 하나는 네 나름대로 방향을 찾았잖아. 하면 돼. 난 언제나 네 편이야. 사람들은 늘 너한테 네 마음대로 하라고 했겠지만, 그냥 너대로 해.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 난 네가 하는 대로 해도 널 응원하고 사랑할 거야. 그 끝이 어떤 모습이어도."
남자는 흐린 초점으로 마음을 쳐다봤다. 어떠한 대답도 어떠한 반응을 바라지 않았다. 한참을 남자와 마음은 눈을 맞췄다. 아무런 소리도 없었지만, 언제보다 많은 대화가 오갔다. 이윽고 남자는 입술을 뗐다.
"그냥, 꺼져. 내 눈앞에서."
21.
"혼자구나."
알람이 울리기도 전이었다. 지난밤 들이켠 술에 속이 쓰린 것도 아니었는데 눈이 떠졌다. 남자는 몸을 일으키지도 않은 채 고개만 돌려 집을 둘러보고는 혼자 되뇌었다. 맥주캔은 바닥에 뒹굴었고 아끼던 옷들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집 안은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조용히 숨을 참으면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 간신히 들렸다. 남자는 가슴이 허한 기분이 들어 마른기침을 하고 부산스럽게 기지개를 켰다.
남자는 TV도 음악도 틀지 않았다. 열 평이 안 되는 원룸 창밖으로 이미 벚꽃은 다 지고 꽃샘추위에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내어놓고 있었다. 남자는 '저 가지에서 또 새싹이 비집고 올라오겠지?' 생각하다 피식 웃었다. 볕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빨래를 돌리기로 했다. 정량의 세제를 덜어 세탁기에 넣고 문을 닫았다.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렸다.
몸이 시키는 대로 자박자박 좁은 방구석을 내디디며 바닥에 흩어진 것들을 치웠다. 몸이 개운한 만큼 마음이 찌뿌둥했다. 남자는 한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청소를 이어갔다. 문득 굳이 왜 어제 청소한 집을 또 치우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냥 치우기로 했다.
남자는 누가 머문 흔적이 없을 만큼 깔끔해진 집을 둘러봤다. 남들은 북향집이 별로라고 하지만 이렇게 꾸며놓으면 북향집도 퍽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터도 있고, 조명도 있다. 남자의 생활에는 최적화되어 군더더기 없는 공간이었다.
22.
"부장님, 이민호입니다. 오늘 사무실 들어갈 예정인데 잠깐 면담 가능하신가요?"
"너 내일까지 쉰다며? 몸은 좀 괜찮아? 그... 절차는 아주 잘못됐는데 그래도 너 지금까지 이런 적 없었으니까 하루 더 쉬고 출근해."
"아뇨.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래? 알았어. 언제 올 건데?"
"점심시간 끝나고 잠깐 들르겠습니다."
남자는 옷장 앞에서 고민했다. 남자는 늘 집히는 대로 입고 다니던 습관이 고작 며칠 새 썩 신경 쓰이는 일이 됐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고민이 무색하게 남자가 고른 옷은 어제 입었던 것과 똑같은 차림이었다. 녹색 니트, 머스터드 색 양말 그리고 휘황찬란한 로퍼까지. 회사에 가면서 단 한 번도 뿌린 적 없던 향수도 두르고 현관 앞에서 집을 한 번 돌아봤다.
집이 참 작다는 생각과 꽤 예쁘게 꾸몄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23.
초봄 날씨는 따뜻하게 시리다.
겨울이 머문 흔적이 아직 남아서 무언가 시작하기엔 어려워 보이지만 사람들은 봄을 떠올리면 늘 '시작'이라는 단어를 연상하곤 한다. 남자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슈퍼에 들렀다. 요새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은 슈퍼에 들어서니 주인 어르신이 손바닥만 한 브라운관을 보고 계시다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봤다.
"어르신, 담배 한 갑이랑 라이터 주세요."
"멋쟁이네? 학생이여?"
"아뇨, 직장 다녀요."
"그려? 그런데 우째 이 시간에 밖에 있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남자는 타인의 사소한 일상을 궁금해하는 어르신의 말이 불편할 법도 한데 싫지 않았다. 어르신은 무심한 표정으로 한 손으로 평상을 짚고 엉덩이를 채 떼지 않은 채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오천 원."
"혹시 카드도 되나요? 제가 잔돈이 없어서..."
"요새 안 되는 가게가 어딨어? 허름해 보여도 나름 최신식이야 여기. 요즘은 나이 먹었다고 고집부리면 안 돼. 젊은 사람들이 우리 같은 노인네보다 더 똑똑하고 번뜩이는데 그 사람들에 맞춰가려고 해야지."
"감사합니다. 어르신 많이 파세요."
"그려, 또 와. 가끔은 오늘처럼 땡땡이도 좀 치고 그려. 그래야 한숨 돌리지."
슈퍼 앞 평상 끄트머리에는 곰팡이가 슬었다. 그 위로 덮인 누런 장판은 당장 드러누워도 좋을 만큼 반짝반짝했다. 오피스텔과 아파트가 가득한 동네에 혼자 과거에 머문 듯한 슈퍼가 건재한 이유는 이 평상만 봐도 알 것 같았다. 남자는 평생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기침이 났다. 몇 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한 모금, 또 한 모금 들이켰다. 매캐하고 고소한 담배 향이 썩 싫지 않았다. 들이킨 만큼 한숨을 내뱉었다. 슈퍼 안에서 슬리퍼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이 나오는 소리에 담뱃불을 급히 끄려던 남자에게 어르신이 말했다.
"괜찮어. 마저 태워. 쓰레기만 저 통에 버리고 가."
"네, 어르신."
"좋겄네."
"네? 저요?"
"그려. 몸도 건강하구 젊고 고꾸라져도 밥 벌어먹는 데는 문제 없는 나이 아녀. 살다 보면 별일 다 있는데 나중에는 다시 고쳐먹으려고 해도 몸이 안 움직여."
"..."
"마저 피우고 쓰레기만 저기 잘 버리고 가."
"네."
24.
"저 일 그만하려고요. 사표 수리 좀 부탁드릴게요."
"하. 야, 이민호. 너 진짜 왜 그래?"
부장님의 목소리가 파티션을 넘어서는 탓에 몇몇 자리에서 미어캣처럼 직원들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남자는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말도 없이 결근한 남자가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 궁금할 만도 할 터다.
"부장님, 사실 그간 고민은 많이 했었어요. 제 마음이 정확히 뭔지 몰라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었고요. 그런데 적어도 지금 하는 이 일이 제가 원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간 우리 일이 많았던 건 알아. 이번에 너도 잘 해줘서 실적도 좋고. 인센티브는 연말에 확실히 보장해줄게. 내가 평소에 구시렁거리긴 해도 걱정 없이 일 맡기는 거 보면 너도 알잖아. 너 일 잘하는 거."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사실 매일 야근하면서 딱히 뭔가 발전하는 건 없고 회사, 집만 오락가락하면서 즐거운 구석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냥 돈을 벌고 집에서 쉬고 또 나와서 돈 벌고... 그런데 그것만 하면서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아요."
"그래. 뭐 그렇다 치자. 다 그렇게 살아. 너 이 회사 나가도 어차피 놀면서 평생 먹고살 수 없잖아. 결국 어디서든 또 일해야 해. 그런 말은 너무 철없는 소리 아니야? 솔직히 말해봐. 어디 스카우트 제안받았어? 아니면 여기 처우가 불만인 거야?"
"스카우트 제안은 아니에요. 처우는 개선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원하는 건 처우 개선이 아니고요. 부장님, 사표 진짜 고민 많이 해보고 올린 거예요. 수리 좀 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너 정말. 일단 휴직으로 하자. 한 달만 좀 쉬면서 생각 잘해보고 결정해. 이런 제안 아무한테나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네가 그간에 일 처리도 깔끔한 편이고 큰 건들도 잘해왔으니까 너한테 더 큰 거 맡겨보고 싶은데 아쉬워서 그러는 거야. 그때 가서도 네가 아니라고 하면 그때는 사표 수리하는 거로 하자."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25.
마지막 아닌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에 본 동료들은 남자를 향한 걱정과 반가움을 담아 잠깐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 한 달 후에 보자고 했지만 어쩌면 이게 끝일 수도 있겠다는 동료들의 마음임을 남자는 어렴풋이 느꼈다. 사무실 문을 나서고 뒤를 돌아봤을 때, 동료들은 금방 현실로 돌아갔다.
남자는 담배를 한 대 더 태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고작 3층 올랐을 뿐인데 계단을 한칸 한칸 오를 때마다 조금씩 숨이 차올랐다. 아직 3층이 더 남았다.
"고작 그거 좀 올랐다고 벌써 숨이 차는 거야?"
마음이었다.
"그때 한 대 때릴 걸 그랬나? 여기가 어디라고 또 나타났어요?"
"난 안 보였을 뿐이지 늘 너랑 있다는 거 몰라? 마저 올라갈 거지? 그나저나 너 담배 다시 태울 거야?"
"남이사."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기껏 오른 옥상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회사 다니면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니 잠겨있는 것도 알 턱이 없었다.
"내려가자."
마음은 먼저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별안간 자물쇠를 걷어찼다. 알량한 경첩이 속절없이 부서지고 문이 왈칵 열렸다. 그 소리에 놀란 마음이 뒤를 돌아봤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예요."
남자가 말했다. 담배를 꺼내 물고 저벅저벅 걸어 나가는 남자의 뒤로 마음이 따라 올라왔다. 남자는 불을 붙이고 발아래 깔린 도시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마음에게 담배를 권했다. 마음은 대꾸하지 않은 채 남자를 바라봤다.
"열심히들 산다. 다들."
"너는?"
"나? 이만하면 열심히 살았죠. 알잖아요.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았는지. 이것보다 어떻게 더 해요."
"그래. 알지. 생각은 정리했고?"
남자는 건물 난간에 걸터앉았다. 한없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마음은 말리지 않았다. 남자는 마음을 등지고 발아래 복작복작한 강남 거리를 내려다봤다.
"그래도 오늘은 내 모습이 제일 멋있더라고요. 자기 집도 정갈하게 정리하고 사는 사람이고 강남 한복판에 제법 그럴싸한 직장도 있고 차려입으니 그럭저럭 근사한 것 같기도 하고요. 이렇게 보면 또 꽤 성공한 사람 같아요. 그렇죠? 이제 담배만 딱 끊으면 완벽하겠네요."
"..."
"그러지 말고 옆에 와서 앉아봐요. 여기 경치 진짜 끝내주네요."
"이제 그만 내려가자. 너 일도 그만뒀으니까 하고 싶은 거 찾아보면서 또 해보면 되지. 아까 어르신 이야기 하신 거 기억나? 너도 알잖아. 사는 거 되게 별거 없는 거."
남자는 몸을 돌려 마음을 쳐다보며 말했다.
"진짜 별 거 없죠... 미안했어요. 아니, 미안했어. 내 마음. 내 앞에서는 화 한 번 내지 않고 내가 어떤 모습이든 늘 내 편이었는데 난 세상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너한테 모진 말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아. '죽겠다는 결심이 너한테... 나한테 얼마나 상처였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나한테 참 모질었구나. 나는 그동안 나한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하는 마음도 들고."
"..."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평소에 네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였으면 어땠을까 싶어. 고맙고 미안해."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내려가자."
난간에 걸터앉은 남자는 옥상 한복판에 서 있는 마음과 한참 동안 눈을 맞췄다. 아무런 소리도 없었지만, 많은 대화가 오갔다. 이윽고 남자는 입술을 뗐다.
"그래, 이제 그만 내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