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를 처음 이겨낸 날의 나는 고급 레스토랑의 알바생이었다. 하루하루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바쁜 식당에서의 홀 서버였다 보니, 이야기의 시작은 제법 요란하고 힘겹다.
와장창-!!
망했다. 사방팔방 펼쳐진 유리조각과 자극적으로 흩뿌려진 맥주는 내 범죄 현장을 그대로 고발하고 있었다. 놀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 멀리서부터 홀 매니저님이 난처한 표정으로 다가오시는 게 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질 때마다 목뒤는 빳빳이 굳어갔다. 굳은 목 사이를 벌레가 비집고 나와 뒤통수를 타고 오르듯 목을 따라 소름이 쫙 끼쳤다. 차분하지만 확실히 기어오르는 게 마치 급할 것 없이 이미 잡힌 먹이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한 마리의 거미 같기도 했다. 거미는 걸음마다 내 신경을 물어뜯었다. 끊어진 신경은 해결법을 생각해내지도, 전송하지도 못 했다. 찢겨 죽어 탄력을 잃은 신경을 들고 거미는 이리저리 꿰매듯 돌아다녔다. 죽은 실로 만들어진 거미집이 내 목부터 정수리까지 지어졌다. 탄성이 없이 조여지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신발끈처럼 줄은 계속 팽팽하게 당겨지며 나를 아프게 압박했다. 이윽고 시신경의 신호마저 끊어져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사이에 코앞까지 와버린 매니저님의 입이 천천히 열리는 게 보였다. 이대로 잘리겠지. 입 사이로 나올 날카로운 말을 기다렸다.
"진정하고, 쫄지마. 네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면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 되는 거야."
매니저님의 입에서 나온 짧은 문장이 굳어버린 몸을 깨우듯 흔들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부드러운 진동에 거미들은 놀랐는지 단숨에 내 몸을 빠져나와 도망쳤다. 그제서야 내 앞에 놓인 상황이 제대로 보였다. 눈 앞에 펼쳐진 건 잔혹한 전쟁터가 아닌, 그저 평범하고 좀 넓을 뿐인 레스토랑이었다. 그리고 방금은 식당에서 일어날 법한 작은 실수가 잠깐 있었던 것뿐이었다. 매니저님은 딱딱하게 굳은 내 목덜미를 한 손으로 잡았다. 꾹, 꾹, 손가락 몇 개만 사용해서 목뒤를 강하지만 아프지 않게 누르는 손힘에 다시 정신이 맑아왔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게까지 매번 크게 놀라고 긴장을 할 필요는 없어. 이 정도 실수는 누구나 해. 너한테는 어떨지 몰라도, 이걸 수 차례 봐서 익숙한 입장으로썬 정말 별일 아니었거든. 그리고, 평소에 스트레칭 좀 해. 목이 이렇게까지 빳빳하니까 맨날 머리가 아프지."
사실, 이렇게까지 다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가공해, 아직까지도 지니고 다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