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삼촌, 오빠, 나 이렇게 4명이 한 집에 살았었는데 뿔뿔히 흩어져 삼촌 혼자 그 집에 살았다. 군대 갔다 온 오빠가 삼촌과 함께 지내는 경우가 많아 크게 마음은 쓰지 않고, 심심한 안부전화나 어버이날에 맞춰 음료랑 주전부리 한 박스씩 택배로 보내곤 했다. 그러다 휴가 가듯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미리 간다는 말도 않고 무작정 내려갔다.
원래 마당엔 귤 나무며 온갖 화분들이 있었는데, 텅 비어있었다. 마당이 이렇게 넓었는지 처음 알았다. 삼촌이 관리가 안 되니 다 없애버렸구나라고 생각했다. 문을 드르륵 여는 순간 알 수 없는 큼큼한 냄새가 났다. 삼촌을 불러봤지만 삼촌은 없었다. 그리고 이내 몸이 떨려왔다. 여름이라 반팔을 입고 갔는데, 집은 시원한 걸 넘어 으슬으슬하게 추웠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집 안은 한바탕 화마가 쓸고 간 것처럼 모든 게 검게 그을려있었다. 찬찬히 가까이서 살펴보는데 집에 없는지 한참 된 할머니가 먹던 약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내 물건들도 그대로 있었다. 이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다는 듯 뱀이며, 쥐며, 곤충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냄비엔 벌레들 사체들로 가득 찼다. 그 넓은 집에 쓸 수 있는 게 단 한 개도 없었다. 쓰임을 잃은 지 오래된 것들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삼촌방은 낫지 않을까 싶어 삼촌 방문을 열어봤다. 삼촌이 눕는 이부자리 밖으로는 모든 게 새까맸다. 까맣게 변한 술병들이 나동그래져 있었다. 바깥은 눈이 부시게 화창한 낮인데 사람 온기가 없는 이 집은 박쥐만 없을 뿐이였지, 시꺼먼 동굴같았다. 눈 하나 둘 곳이 없었다. 멀쩡해보이는 거라곤 그나마 아직 덜 까매진 이부자리밖에 없었다. 집이 너무 어두워 모든 방의 불을 켰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몇 번을 쓸고 닦고를 반복했다. 닿는 족족 검은 때가 끝도 없이 묻어나왔다. 땀이 비 오듯이 흘렀지만 끝나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삼촌이 왔다. 삼촌이 원래 마르기도 했지만 정말이지 못 봐줄 정도로 말라있었다. 삼촌은 되게 무뚝뚝한 사람인데 내가 온 게 너무 반가운지 얼굴에 확 티가 났다. 나는 삼촌에게 물었다. "오빠는 어디 갔어?" 했더니, "그놈의 새끼는 지 필요할때만 왔다 갔다 해."라고 했다. 이런 집에서 생활하는 삼촌도, 왔다갔다 지냈을 오빠도 참 징하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집을 치우고 버릴 것들을 모아 마당에 한데 모아 놨다. 마당엔 쓰레기들이 모여 작은 오름이 되어갔다. 삼촌은 쑥스러운지, 창피한지 옆에 계속 서성거렸다. 5시간 정도가 흐르니 바깥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고, 집은 한층 환해졌다. 그새 삼촌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트에 가서 냄비와 먹을거리들을 사 와서 요리를 했다. 같이 밥 먹으려고 삼촌을 기다렸다. 삼촌이 오더니 내게 봉투를 주고는 기다리지말라고, 오늘 못 들어온다며 신이 나서 가버렸다.
봉투가 꽤 묵직했다. 열어보니 150만 원이 있었다. 집을 보고, 삼촌을 마주하며 꾹꾹 참아왔던 감정들이 올라왔다. 그 돈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럴 돈 있으면 먹을거라도 좀 사먹지… 다음날, 삼촌에게 이 돈은 받을 걸로 칠 테니, 몸 잘 챙기라고 편지를 쓰고 돈 봉투와 함께 삼촌 이부자리 밑에 두고 왔다.
그리고 몇 년 후, 삼촌의 장례식장에서 본 동네 삼촌이 내게 말을 했다.
"네가 온 날 삼촌이 내게 너 줘야 된다고 150만 원을 꿔갔다.
그날 삼촌이 니가 온게 너무 행복하고 좋아서 밤새도록 춤추다 잠들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