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책을 놓는다면 어디에 놓고 싶어요?"
"글쎄요. 잘 보이는 데 예쁘게 놓지 않을까요?"
사장님은 그런 마음으로 모든 책을 대해달라고 했다. 매일 먼지를 털 때마다 저 대화가 생각난다. 책의 의미를 사랑하는 건 기본이고 책의 물성도 사랑해야 하는 게 책방지기의 기본 마음가짐이란걸 배웠다. 새로이 오픈한 지점이라 매뉴얼이 없었다. 기존에 운영하던 곳과 지역도 달랐고(여긴 3호점이다.) 취급하는 도서 분야도 달랐기에 기존의 것을 적용할 순 없었다. 요리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듯 나라는 새로운 인물이 관리하는 책방은 기존의 것과 같을 수가 없었다.
관련 자료가 생기거나 총회의를 할 때마다 야금야금 노션에 정리해두었다. 요청한 것도 적어놓고 해보고 싶은 것도 적어놓았다. 기록을 남기는 건 여러 책에서 강조하듯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된다. 다른 책방지기의 일지를 모은 책도 많이 사봤다. 상상만 할 때 미리 봐뒀다면 미리 공부를 좀 해뒀을 텐데.
글 책 위주로 사랑했던 터라 책방에서 만나는 디자인 서적이 어려웠다. 책방은 디자인 서적, 아트북, 사진집, 그래픽 노블, 디자인 실용서가 주요 분야다. 학생 때 과제를 위해서 몇 권 사봤었지만 한참 커서 다시 만나니 데면데면했다. 하루에 한두 권은 봐두어야 어떤 책인지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봐왔던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던 책방지기의 모습이 회사원의 야근 때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는 것은 물론 주제와 관련된 정보나 작가의 다른 책 정보도 꼼꼼히 살펴본다. 내가 잘 읽은 책을 손님이 들고 와 질문하면 책에 대한 투머치토크가 시작된다. 책방지기가 칭찬하는 책은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았다.
바코드 스캐너가 없이 계산하는 건 한 권은 쉬웠지만 우르르 권은 헤맸다. 계산기를 쓰면 되는데 손님 앞에서 핸드폰 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인식이 머리에 박혀 있었다. 책 뒤표지를 보며 한참 멍청한 표정으로 암산할 바에는 그냥 계산기 쓸걸.
손님으로서 책방지기에게 말을 거는 건 쉬웠지만 책방지기로서 손님에게 말 걸기란 쉽지 않았다. 직장에서 팀장님한테 억울하다고 따져나봤지 손님에게 말을 걸어 본 적은 없었으니까. 친근하게 너스레를 잘 떠는 사람이 부러워졌다. 몇 번 너스레를 따라 해봤다가 눈코입이 내 것이 아닌 양 따로 놀아서 금방 관뒀다. 손님이 말 한마디 걸어주면 아주 기뻐진다. 입이 트여 한두 시간 수다는 기본이다.
출근하면 전등을 켜고 간판을 내어놓고 바닥을 쓴다. 책 진열을 바꾸기도 하며 먼지를 턴다. 최대한 자연스럽고 예쁜 구도를 고민해 사진을 찍고 인스타에 오픈을 공지한다. 책방 음악지기가 선정해 준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커피를 내려 자리에 앉는다. 노션과 슬랙, 구글 드라이브, 네이버 책 탭을 열어둔다. 오늘 읽을 책을 뽑아 자리에 앉아서 업무 리스트를 쓴다.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일을 처리하며 손님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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