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열심히들 산다. 다들."
금요일 밤, 늦은 시간에도 창밖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보며 마음이 말했다. 자조적인 웃음이 섞인 말이었다. 딱히 남자를 집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는 마음의 말이 괜히 불편했다.
"아, 너 들으라고 하는 소리 아니니까 괜히 그러지 말고. 인간은 참 웃겨. 자연 앞에서 모든 걸 자기 의지로 극복하고 개척한다고 믿지만 정작 삶의 시작과 끝은 자의적이지 않잖아. 알고 보면 자유 의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어."
"시작은 선택하지 못해도 끝은 선택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남자는 맥주 한 캔을 꺼내 들이키며 날 선 말투로 쏘아붙였다. 손을 뻗어 맥주를 받으려던 마음이 괜히 얄미워진 남자는 마음의 손을 모른 체 했다. 마음은 그런 남자가 좀스럽다는 듯 째려보고는 냉장고로 향했다.
"너 그 이야기 들어본 적 있지? 태어난 김에 대충 사는 것과 이왕 태어났으니 뭐라도 하며 사는 거. 넌 어느 쪽에 가까워?"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그 둘이 별 차이가 없어 보여도 사실 어마어마한 차이잖아. 삶의 목적이 있냐 없냐의 문제니까.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이유라도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거든. 그런데 젠장, 남 눈치를 너무 봐. 삶의 목표가 뭔가 거창하고 대단해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야."
"사는 데 이유가 있어요? 굶어 죽지 않으려고 버티는 거지. 당장 즐겁고 잠깐 웃어넘길 수 있는 일들은 많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또 하루를 버텨내는 게 일이잖아요. 그냥 최선을 다해 현실을 살아내는 게 삶이에요. 삶의 목표? 그런 것도 따지고 보면 배부르고 등 따신 사람들이나 가지는 거지."
"그 잠깐의 시간을 늘려가는 게 목표라면? 하루에 네가 잠깐이라도 즐겁고 잠깐이라도 웃어넘기는 순간들이 많아지는 게 목표라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거 아니야? 야, 행복이 별거냐. 그냥 덜 걱정하고 덜 힘들면 장땡이지. 아니, 하다못해 힘들더라도 뿌듯하면 그걸로 된 거 아니야? 기분 좋잖아."
"낭만적이네요."
마음은 마시던 맥주를 내려놓고 남자를 바라봤다. 마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 눈빛은 단호했고, 어딘가 남자를 다그치는 기분이 들었다.
"너 초등학교 때 기억나?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엄마가 해주는 간식 먹고 하기 싫어 죽는 학습지 몇 장 풀고 나면 팽이치기 하고 롤러블레이드 타러 나가고 했던 거."
"기억나죠. 그때 좋았죠. 걱정도 없고."
"그땐 왜 좋았는데? 진짜 걱정이 없었어? 다음 날 받아쓰기 시험도 걱정되고, 좀 더 놀고 싶은데 엄마가 늦게까지 남의 집에 있지 말라고 하는 것도 신경 쓰이고 그랬잖아.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넌 많이 웃고 즐거웠는데?"
"…."
9.
어릴 적 남자는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게 좋았다.
<스피드왕 번개>라는 만화 주인공처럼 멋지게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게 목표였다. 하교 후에는 학습지를 해치우고 해가 질 때까지 동네 꼬마들과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또 탔다. 덕분에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롤러블레이드 도 대회에서 200m, 400m 3등을 기록한 적도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엔 TV에 나오는 어느 마술사가 참 멋져 보였다. 그 시절 남자아이들의 칠 할은 그 마술사가 낸 책을 사 들고 교실에서 마술을 연습하곤 했었다. 남자는 그즈음 같이 놀던 친구들을 모아 마술 동아리를 만들었다. 어렵사리 담당 선생님을 구하고, 동아리방을 꾸며가며 후배들도 모집했다. 그해 학교 축제 때에는 제법 그럴싸하게 공연도 올렸다. 학생들의 박수 소리에 심장이 요동쳤던 기억은 남자에게 꽤 오래 여운이 남는 일 중 하나다.
고등학교 때에는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당시 이스포츠라는 문화가 처음 생겼고 남자 또래의 프로게이머들이 억대 연봉을 기록하며 사람들이 프로게이머를 직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PC방 예선에서 전 시즌 4강을 기록한 프로게이머를 만나면서 프로게이머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걸 일찌감치 깨닫게 됐다.
동네 학부모들은 '놀 거면 남자처럼 놀아라'라고 했었다. 일진이니 뭐니, 불량하게 놀 바에는 차라리 남자처럼 이것저것 경험하며 놀라는 의미였지만, 남자의 부모님은 다른 아주머니들의 말이 썩 탐탁지 않았다. 그 탓에 남자는 그 시절 부모님과 다툼이 잦았다. 왜 엄마랑 아버지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느냐고 내가 친구들이랑 즐겁게 놀고 행복해지고 싶다는데 그걸 막느냐고.
"와, 파이팅 넘치네. 아니 저런 패기가 있었다고? 거의 체 게바라고 전태일인 줄. '왜! 나는 행복하면 안 되는데!' 이야, 대단해."
남자는 본인과 똑같이 생긴 마음이 깐죽거리는 걸 보며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치밀었다. '내가 얄밉게 굴면 보는 사람은 이런 기분이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이야, 그런데 너 진짜 저런 적도 있었다. 맞아. 지금 찐따 같은 모습보다 훨씬 낫네."
"철이 없는 거죠."
"철 좀 없으면 어때. 적어도 그때 너는 네가 어떻게 하면 행복한지를 잘 알고 있었네. 안 그래? 지금 넌 내가 보기에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아. 회사에서 상사들 꼬장 다 받아주고, 야근 수당도 못 챙기면서 맨날 야근하고. 돈은 그렇게 최선을 다해 벌면서 네 행복을 위해서는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데? 연애할 때 여자친구 기분은 최선을 다해 맞춰주면서 왜 정작 본인의 기분은 최선을 다해 살피지 않냐고."
10.
남자는 사실 서핑도 하고 싶고 가죽 공예도 배워보고 싶고
자취 요리로 유튜브 채널도 열어보고 싶다.
그런데 짧은 휴가를 내고 지방으로 내려가 고작 며칠 서핑을 배우고 다시 돌아와 봐야 남는 것도 별로 없고 여간 피곤한 게 아닐 거라는 추측, 가죽 공예를 배우려면 빠듯한 생활비에 괜히 월말을 걱정해야 하리라는 불안함, 열심히 영상을 찍고 편집해도 유튜브가 흥할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함에서 오는 귀찮음과 무력감을 핑계로 남자는 그 어느 것도 하지 않고 있다. 남자가 하고 싶은 것들은 모두 볼 끝이 저릿하게 시큼한 포도다.
일상에서 아무런 걱정이나 고민 없이 안락함을 느끼는 가장 쉬운 방법은 퇴근 후에 맥주 한 잔과 침대에서 보는 유튜브가 전부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마음이 편안했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삶의 일시 정지다.
남자는 어느 것 하나 반박할 수 없었다. 마음이 하는 말에 틀린 구석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엄마의 말이 딱 맞다. 그러나 남자가 틀린 것 하나 없는 마음의 말을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매 순간 분투하는 삶인데 내 행복마저 아득바득 쟁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남자가 삶을 치열하게 살았다고 그 보상으로 남자가 원하는 행복이 당연하게 따라오지는 않았다. 남자는 지친 건 그 때문이다.
마음은 아무 말 없이 남자의 왼쪽 어깨를 힘주어 주물렀다. 성급한 위로도 무책임한 격려도 아니다. 마음이 곧 남자이기에 건넬 수 있는 가장 간결한 이해, 딱 그 정도였다.
"행복이란 건 말이야. 공짜로 주어지지 않아. 세상 모든 것엔 인과가 있고, 행복을 좇는 건 어떤 열매가 날지 모르는 나무를 키우는 것과 같아. 삶을 사는 건 나무를 키우는 과정이고 그 결과로 반드시 열매는 나지. 지금 네가 행복하지 않은 건 어쩌면 너무 잘난 행복을 바라기 때문인 건 아니야?"
"…."
"모든 사람이 기둥이 두껍고 열매가 큰 사과나무만 키우는 게 아니야. 누군가는 앙상한 가지에 올망졸망 빨간 열매를 맺는 앵두나무를 키우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냄새가 고약한 은행나무를 키우기도 해. 다른 사람이 키운 멋진 사과나무가 부러울 수 있어. 네가 공들여 틔운 새싹과 오래도록 기다린 열매가 꼭 네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틔우기 위해 네가 들인 시간과 노력이 헛된 건 아니잖아. 네가 애써 피워낸 건 빨간 앵두야. 그 작은 열매가 총총 맺혀있는데 사과보다 작다고 해서 네가 나무를 키운 일이 의미 없는 건 아니잖아. 크기는 작지만 어쩌면 사과보다 더 많이 열렸을 수도 있고 가지는 앙상하지만, 열매는 더 달고 맛있을 수도 있어."
남자는 가슴이 뻐근했다. 마음이 하는 말을 듣고도 여전히 현실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지칠 대로 지친 본인의 영혼이 갑자기 치유되지는 않을 걸 잘 알았기에 무기력한 답답함이 앞섰다. 그럼에도 본인의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일말의 안도감이 동시에 물밀듯 밀려들었다. 눈물이 흘렀다. 억울함과 서러움이다.
마음은 그런 남자를 감히 안쓰럽게 보지 않았다.
"선택은 늘 네 몫이야.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난 설득하러 온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질문할 뿐이야. 다만, 네가 틔운 앵두나무는 누군가가 간절히 키우고 싶었던 나무일 수도 있어."
11.
"봄인데 을씨년스럽네요."
"야, 네가 나를 이렇게 마주 보는 상황이니까 을씨년스럽지 남들은 따뜻하다고 생각해. 저 봐봐. 사람들 봄옷 입은 거 안 보여?"
아직 싸늘한 3월의 바람이 노란 햇볕을 피해 도망 다닌 탓에 따뜻하지만 쌀쌀한 봄이다. 남자는 마음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은 참 다르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청소기를 돌리며 문득 늘 버거운 삶이지만 요 며칠 버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치열한 삶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삶을 포기하니 정작 여유가 생기는 아이러니라니. 남자는 본인 꼴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 사실 너 살고 싶은 거 아니야? 막상 일도 좀 쉬고 여유 생기니까 살만하잖아. 아니야?"
창밖을 보던 마음이 고개를 돌려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죽고 싶은 놈이 뭐하러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청소기를 돌려? 너 지금 주방만 10분째 청소하는 거 알아? 좀 있으면 바닥 반사판 되겠다. 아휴 시끄러워죽겠네. 대충해. 청소 못 해서 한 맺혔어?"
대충이라는 단어가 거슬렸다. 남자에게 '대충'은 낯설었다. 늘 잘하는 건 아니어도 최선을 다했던 삶이다. 남자는 좁은 방 절반을 치우다 말고 청소기를 껐다. 그리고 그 자리에 털썩 앉아 마음에게 물었다.
"나, 대충하고 싶었던 적 있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네가 뭐 하나 대충한 적이 있었냐?"
"아니 그러니까. 나는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만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내 마음이니까 알 거 아니에요. 사실 나도 대충하고 싶어했던 적이 있었어요?"
"셀 수도 없지. 나 정말 만날 속 터져 죽는 줄 알았어. 내가 그렇게 대충 좀 하라고 해도 뭐 하나 대충하지를 않으니까 스트레스받고, 잔병치레하고, 몸도 지치고."
"그런데 왜 난 그렇게 대충하고 싶었으면서 대충 한 적이 별로 없을까요?"
"네가 겁이 많고 남 눈치를 많이 보는 쫄보니까. 야, 갑자기 왜 일어나? 어디 가려고? 삐친 거야?"
"아뇨. 그냥 바람 좀 쐐야겠어요. 오늘은 좀 대충 돌아다녀 보려고요."
"같이 가. 한강 갈래? 요즘 날씨면 괜찮을 것 같은데 스피커도 좀 가져가고."
"나 혼자 나가고 싶다고 해도 어차피 따라올 거죠?"
"당연하지. 내가 너고 네가 난데 같이 가야지."
"그럼 대신 오늘은 조용히 좀 있어요."
"아, 그럼 심심하잖아. 아, 일단 알았어."
12.
"넌 뭐가 되도 될 놈이다."
남자가 십수 년을 한결같이 듣는 말이었다. 타인이 툭 뱉는 저 한 문장이 남자에게는 인정이고 안도감이고 위로였다. 지금의 어떤 불만과 불안도 언젠가 끝내 보상받을 거라는 맹목적인 신앙이다. 그 때문에 남자의 삶에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 최고와 최선.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최고와 최선, 그 둘이 아니라면 어떤 것도 무가치하다는 생각은 남자에게 십계명과 같았다. 이런 신앙은 남자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했다.
학창 시절 남자는 공부 머리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선생님들은 늘 남자를 성실한 학생으로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성적을 올려보려 부모님이 보낸 학원에서도 선생님들은 '민호가 참 열심히 한다'고 했지 잘한다고 하지 않았다.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글짓기에 소질이 있던 남자는 수시논술로 제법 이름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돌이켜 보면 그 뒤로도 지난 수년간 남자의 삶은 매 순간 전쟁이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할 때까지는 여느 또래들과 다를 바 없었다. 휴학 후, 어렵게 인턴 자리를 구하고 회사에 다니던 남자는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성 뇌졸중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마저 도산하면서 형편은 속절없이 나빠졌다. 남자의 나이는 고작 스물다섯이었다. 가장의 부재는 컸다. 하루가 다르게 삶은 어려워졌다. 남자의 엄마는 밤낮으로 일을 했고, 남자는 인턴마저 그만두고 병간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동생은 아직 중학생이었다. 남자는 정신을 단단히 붙들자고 수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무너질 수 없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우리 배에 아버지가 붙들던 방향타는 이제 내 몫이 되었다. 가족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남자는 우선 어떻게든 빨리 졸업을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지금 남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버지는 이듬해 봄을 넘기지 못했다. 남자는 원치 않게 어른이 되어 버렸다. 장례를 치르고 행정복지센터에 사망신고를 하고 보험사를 찾아다녔다. 어른들이나 할 법한 일들을 혼자서 해냈다. 남자는 본인의 행동에 누구 하나 나서서 책임져줄 수 없는 어른이 되었다. 아버지가 그리운 마음은 사치였다. 어린 동생과 엄마 앞에서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게 그 당시 남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과 이별을 감당하고 있는 것만도 벅찰 텐데 남자는 스스로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복학하고도 일을 했다. 아파트 공사장 일, 대리운전, 고깃집, 과외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성적은 잘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성적보다는 졸업이 중요했다. 알량한 졸업장 하나로 남자가 할 수 있는 직업의 가능성이 다양해지기 때문이었다. 그게 남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서둘러 졸업을 하고 최선을 다해 200장이 넘는 입사 지원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누군가는 그런 남자에게 눈을 낮추라고 했지만 세 식구 걱정 없이 살기 위해서는 그럴 수 없었다. 그건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남자가 들어간 첫 회사는 들어간 지 석 달 만에 부도가 났다. 마음이 급한 탓에 남자가 들어간 두 번째 회사에서는 취업 사기를 당했다.
그즈음 남자는 세상에 화가 났다. 늘 최선을 다했고 어느 때보다 절박했다. 노력은 모든 순간 남자를 배신했고 좌절은 언제 끝날지 가늠할 수 없었다. 바닥을 경험하면 꼭 다시 올라온다는 흔한 위로는 지독하게 원망스러웠다. 언제나 최선과 최고를 선택했지만 모든 결과가 실패였고 더 화가 나는 건 그 상황이 남자가 자초한 일도 아니어서 더 무기력해졌다. 애초에 행복은 본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즈음 죽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하지만 떳떳하지 않게, 책임감 없게 죽음을 선택할 수 없었다. 그건 최선도 최고도 아니었다. 그래서 남자는 결심했다.
5천만 원을 벌면 죽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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